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남도 광주군 와곡면(光州郡 瓦谷面)에 거주하던 사람으로 공주·순창 등지에서 후기 의병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1906년 4월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이 국운이 날로 기울어 을사조약이 강제로 늑결되게 되자 "근고팔도민서(謹告八道民書)"라는 격문을 각지로 띄웠다.
박현동은 그 격문을 보고 면암 의진에 가담할 것을 결의하고, 그에 호응하기 위하여 의병 200여 명과 총 20∼30정으로 무장하고 광주 수비대를 공격할 목적으로 공주(公州)를 떠났다.
다시 전북 임실(任實)에서 의병 80여명과 총 50 정을 추가하고 면암의 근거지인 순창(淳昌)으로 들어가 주둔하였다.
4월 7일부터 8일 사이에 광주·전주·공주 등지로부터 면암 의진을 저지하기 위해 집결한 진위대와 수비대를 상대로 순창 읍내에서 교전하였으나, 의진의 형세가 정비되기 전이었으므로 패퇴하고 말았다.
그러한 일련의 의병활동이 적에게 발각되어 1910년 3월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유형(流刑)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경술국치로 일제의 밀계가 이루어지자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8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