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2월 28일 서울에서 박희도 등이 보내온 「독립선언서」 300장과 서신이 해주읍 남본정 기독교회 오현경 목사에게 전달되었다. 오현경은 교인들과 함께 고종에 대한 봉도식과 함께 선언서 봉독식을 거행하고 선언서를 배포할 것을 계획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경 남본정 교회에는 기독교인 180여 명이 모여 고종 봉도식과 선언서 봉독식을 마치고 만세삼창을 불렀다. 3월 10일 정오경에는 천도교인 수백 명이 무리를 지어 정오경에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세우고 대거 해주 읍내로 진입하며 시위를 감행했다. 여기에 기독교인 수백 명과 읍내 주민 등이 합세하여 시위군중이 해주읍의 큰 거리를 뒤덮었다.
3월 12일에는 해주군 추화면 낙현리(樂晛里) 청단(靑丹) 장터에서 6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대대적인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 이 날은 청단장날이었는데 청단 시장의 젊은 상인이던 김택근(金澤根)과 연백군의 청년 조인배 등은 군중의 선두에 서서 이날의 만세시위를 선도하였다. 그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면사무소로 몰려가 일본 행정의 철수를 요구하였다.
이처럼 조인배는 3월 12일 청단장날 만세시위를 주도했다가 체포되었다. 해주지방법원(海州地方法院)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상고하였다. 1919년 6월 7일 고등법원(高等法院)에서 상고가 기각당했으며,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0년 4월 27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6. 7)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225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183~1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