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8일 대구(大邱) 시장에서 이만집(李萬集)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8일 아침 대한독립만세 또는 태극기에 독립만세라고 쓴 유인물이 도청을 비롯한 여러 곳에 뿌려졌다. 계성학교 학생 100명은 시장 근처로 집결하고, 성경학교 학생 20명도 도착하였다. 신명여학교 학생 50명도 시장 근처에서 궐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3시 무렵 대구고보 학생 200명이 헌병기마대와 격투를 벌이면서 돌진해오자, 계성학교 학생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헌병들을 격퇴하고 시장에 몰려들었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태극기가 배포되면서 학생시위대가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학생과 군경은 가두에서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벌어졌고 그 사이 군중들이 합류해 시위대열은 약 1,000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열이 종로통을 지나 달성군청이 있는 지점까지 진출하였을 때, 대구 80연대의 병력이 출동하여 총기로 탄압하였다. 부상자가 속출하므로 학생 시위대는 뒷날 다시 궐기하기로 하고 일단 해산하였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계성학교 학생 김달윤은 체포되어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9권 270~271면, 350~352면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19. 4. 1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27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