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경북 영천(永川) 사람이다.
송병철(宋炳喆)의 권유를 받고 조선의열단에 입단하였으며,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낙양분교(洛陽分校)에 특별히 설치된 한국 군관훈련반에서 정치훈련과 전술 및 내무·교양관계의 학과를 훈련받았다.
낙양분교(洛陽分校) 한국군관훈련반은 1년도 못되어 해체의 위기를 맞게 되었으나 그는 낙양분교를 제3기로 졸업하고 남경(南京)으로 가서 의열단(義烈團) 지하운동에 가담하였다.
1938년 6월에는 중앙군 특별반을 졸업하고 한구(漢口)에 와서 선전공작원으로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상을 폭로하였다.
1938년 봄에 김약산(金若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민족혁명당이 무한(武漢)에서 조선청년전위동맹·조선민족해방동맹·조선혁명자연맹 등 좌익계통의 정당과 합작하여 이른바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였으며, 그 후로 간행물 등을 펴내어 대일 선전공작을 전개하는 한편 중국군사위원회 정치부와 교섭하여, 같은 해 10월에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를 창설하였다. 이때 그는 통신처(通訊處) 의창주임(宜昌主任)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42년 4월 조선의용대가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됨에 따라 그는 광복군 총사령부 경리과에 소속되어 복무하였다.
1943년부터 광복시까지 그는 광복군 부령(副領)으로 총사령부 참모처 3과에 배속되어 복무하였다.
광복 후 국군에 입대하였으며, 6·25전쟁 중 화순지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936 1037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57·261·378·385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25·431·439면
- 자료한국독립운동(추헌수) 1권 314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2권 409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권 263 474 542·610·855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5권 7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686 687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77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126 289 308 6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