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1921년 12월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의 창립위원이 되어 국어·국문의 연구와 보급에 진력하였다. 1929년에 조선어연구회의 조선어사전 편찬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30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제정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고, 1936년에는 조선어연구회를 확대 개편한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의 조선어 표준어사정위원회(朝鮮語標準語査定委員會)의 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31년에는 동아일보사의 지원으로 조선어학회의 전국순회 조선어강습회에 강사로 참가하여 1천 6백여명의 지도층 청년에게 국문법을 강의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34년 5월에는 국사·국어국문을 중심으로 한 국학 연구단체인 진단학회(震檀學會)의 창립 발기인이 되어 국학운동에 참가하였다. 1935년에는 조선기념도서출판관(朝鮮紀念圖書出版館)을 조직하는데 참가하여 그 제1차 사업으로 그의 『조선문자 급 어학사(朝鮮文字及語學史)』를 간행하였다. 1937년 6월에 수양동우회사건(修養同友會事件)으로 일제에게 붙잡혀 잔혹한 고문을 받고, 1941년, 10월 고등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을 때까지 4년간 투옥과 연금의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1942년 10월 일제가 한국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 말살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한글, 연구자들을 탄압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조선어학회사건(朝鮮語學會事件)으로 구속되어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와 함흥경찰서에서 다시 일경의 잔혹한 고문과 악형을 받았으며, 1943년 9월 1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기소유예로 석방되었으나, 실질적으로 1년간의 옥고를 겪었다. 1945년 8·15광복 후에는 연세대학교의 교수·총장과 한양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하면서 국어국문 연구에 종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45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2권 13·501·82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33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32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48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2권 1283·1293·1298·1300·1328·1337·1391·142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38·337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2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400·462·499·501·609·610·969·993·997·1004·1005·1011·10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