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남 창녕(昌寧) 사람이다. 1919년 3월 13일 창녕군 영산읍(靈山邑)에서 남경명(南景明)·구중회(具中會)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들은 '독립운동에서 후퇴하는 자는 생명을 빼앗긴다'는 내용의 맹세서에 각기 서명한 후 700여명의 시위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읍내를 시위행진 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판결이 부분 취소되었으나 징역 8월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226∼122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228∼2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