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09년 2월 전북 태인(泰仁) 등지에서 정성현의진(鄭成鉉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정성현은 이석용의진(李錫鏞義陣)의 우포장(右砲將)이었다. 이석용은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으로 1908년 8월 전북 진안(鎭安)에서 거의(擧義)하여 의병대장에 추대되었다. 1908년 9월 성재 기삼연이 호남창의진을 결성하자 종사(從事)로 참여하여 고창(高敞)에서 일본군 병참을 습격하였고, 용담(龍潭)에서는 김동신의진(金東臣義陣)과 합세하여 일본군과 접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8년 9월 임실전투에서 패하여 의병진을 해산하고 유랑하다가 1913년 겨울 임실에서 체포되었다. 1914년 1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공판을 받아 1914년 4월 4일 대구형무소에서 교수되어 순국하였다. 이에 정성현은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편성하고 임실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양운경은 정성현의진에 참여하여 1909년 2월부터 태인·순창·남원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2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태(苔) 100도(度)의 형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5권 809면, 16권 11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권, 6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