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북 강계(江界) 사람이다.
황순일(黃順一)·강기동(姜基東) 의진에 가담하여 경기도 양주(楊州)·포천(抱川)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등 식민지화에 광분하였다. 이에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상실된 국권을 회복코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원호는 의병에 투신하여 1908년 음력 12월경 의병장 황순일의 휘하에서 동지 30여 명과 함께 총검을 휴대하고 경기도 양주군 일탄면에 침입하였으나 군자금 획득에는 실패하였다. 이어 1909년 음력 1월경부터 경기도 양주군과 포천군 등을 주 무대로 군자금 확보와 친일파 처단에 주력하던 의병장 강기동의 휘하에 들어가 좌익대장(左翼大將)이 되어 각지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5월 30일 강기동 의병장이 포천군 송산동(松山洞)에서 일본군 헌병대의 밀정인 이일남(李一男)·김윤흥(金允興)·노수원(盧守元) 등 3인을 잡아 처단할 때 척후를 담당하면서 조력하였다. 또한 그는 같은 해 7월 11일 양주군 둔야면(芚夜面) 누원(樓院) 전완준(全完俊)의 집에 돌입하여 "우리들의 행동을 의정부 헌병분견소에 통보하였으니 그곳의 밀정이다"고 그를 힐책하였다. 그러나 이 때 그가 도주하자 강기동 의병장과 의논하여 그의 집을 불태워 친일행위를 응징하는 등 주로 친일파 처단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붙잡혔다. 그리하여 1910년 7월 1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 공소하여 9월 7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5년으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8·29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7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142·1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