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영덕(盈德) 사람이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읍(寧海邑) 장날을 이용하여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영덕군 낙평동(洛坪洞) 교회 조사인 강우근이 서울의 만세소식을 기독교측의 인사들에게 전달하면서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영해의 만세운동계획은 기독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들은 3월 18일 영해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군내의 영해면·병곡면(柄谷面)·축산면(丑山面)·창수면(蒼水面)의 기독교도와 농민층을 광범위하게 규합하면서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동화는 이같은 거사 계획을 접하고 적극 참가하였으며, 3월 18일 오후 1시경, 2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성내동(城內洞)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그는 시위군중들과 함께 경찰주재소로 달려가 일경들을 포위하고 독립만세를 따라 부를 것을 주장하여 그들로 하여금 독립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그후 일본인 소학교·우편소·면사무소 등의 건물과 집기를 파괴하고 주재소로 몰려가 무기를 빼앗아 파기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또한 영덕경찰서에서 긴급 출동한 일경을 구타·응징하며 기세를 높였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붙잡혀, 이해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 방해·건조물 손괴·공문서 훼기·보안법 등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19. 7. 11. 大邱地方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43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76∼139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