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경주중학교(慶州中學校)에 재학 중이던 1944년 4월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명성회(明星會)에 가입하였다. 명성회는 일제의 식민정책을 개탄하고 이정선(李貞善)·권태염(權泰琰)·정현모(鄭賢模)와 함께 정세를 틈타 무장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하자는 지하결사이다. 신두수는 명성회의 기관지 '새벽'지를 일문(日文)과 국문(國文)으로 간행하여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경주중학교·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등의 학생들에게 배포하여 항일사상을 고취하였다. 그는 '새벽'지의 논설주필로 일본제국주의가 연합군에 의하여 곧 패망한다는 논조를 펼쳐 항일정신을 고취하였다. 명성회는 1944년 11월 조선회복연구단(朝鮮恢復硏究團)과 연합하여 1945년 2월 17일 무장봉기를 결행할 계획을 세우고 자금조달과 동지규합에 진력하였다. 신두수는 중경의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지령에 따라 밀파한 이회술(李會述)과 안동농림학교 학생 손성한(孫聖漢) 등과 학병징용을 거부하고 돌격대를 조직하여 후방교란 작전으로 일본군 무기고 기습작전 등을 계획하던 중에 3월 초 대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신두수는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구속되어 5개월간의 옥고를 치르다가 해방을 맞이하여 8월 16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해방후 의성의 봉양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刑事事件簿(朝鮮總督府裁判所, 1945)
- 安東版獨立史(明文社, 1985) 333·336·337面
- 安東鄕土誌(宋志香, 1983) 436∼438面
- 安東農林學生抗日略傳(安東農林高等學校同窓會, 1978) 17·18·21面
- 大邱慶北抗日獨立運動史(광복회 대구경북연합지부, 1991) 304∼30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