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3. 5 경기도 (京畿道) 고양군 (高陽郡) 용강면 (龍江面) 동막상리 (東幕上里) 에서 정호석 (鄭浩錫) 이 독립만세 시위 운동 (獨立萬歲示威運動) 을 일으켜 태극기 (太極旗) 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 (高唱) 하며 사립 흥영학교에 이르러 자신에게 시위에 가담할 것을 요구하자 이에 찬성하여 동교 (同校) 생도 수 십명을 인솔하고 동교 (同校) 에서 공덕리에 이르는 동안 독립만세를 고창 하며 함께 시위를 전개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 징역 7월에 집행유예 (執行猶豫) 3년을 받고 미결 (未決) 로 8월여간 (月餘間) 의 옥고 (獄苦) 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1919년 3월 5일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용강면(龍江面) 동막상리(東幕上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고양군에서는 한지면(漢芝面)과 용강면(龍江面) 및 군내 각 면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가운데 용강면 동막상리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은 정호석(鄭浩錫)에 의해 추진되었다.
정호석은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음을 전해 듣고, 동막상리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정호석은 3월 5일 자신의 집에서 태극기를 만들어 동막 사립 흥영학교 앞에서 흔들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동막 사립 흥영학교 직원이었던 오정화(吳貞嬅)는 정호석으로부터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받고, 여기에 찬동하여 흥영학교 직원 박성철과 학교 생도 10여 명을 인솔하여 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 이들은 학교에서부터 용강면 공덕리까지 행진하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오정화는 이날 시위로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미결(未決)로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04∼110·111∼12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