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남 북청(北靑) 사람이다.
1919년 3월 1일 탑동공원(塔洞公園)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중동학교 학생이었던 최용무는 동교생인 이학(李鶴) 등과 함께 학교를 대표하여
이날 오후 2시 탑동 공원에서 벌어진 독립선언식에 참가하였다. 오후 2시 30분 경, 그는 많은 학생·시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를 행진하다가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이해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출판법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21년 7월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1921년 7월 1학년 수업 중 일인 해부학 교수가 민족적 모욕을 행하는 것을 보고 조선인 재학생들과 합심하여 맹휴를 벌이다가 무기정학을 당하였다.
그후 그가 고향인 북청에 와 있던 1927년 7월 경, 그의 모교인 함남 북청공립농업학교에서 맹휴가 일어났다. 그 발단은 교장의 조선민족 비하 발언이었다.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해 모인 동교 교우회(校友會)의 실행위원 자격으로 참가하여 여러 가지 해결책을 토의하였다. 그들은 이 문제를 민족문제로 규정짓고, 학교측에 철저한 진상 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퇴학 학생 전원의 복교를 주장하여 학교측의 양보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第11輯 9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183∼191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94∼121·142·719·720面
- 判決文(1919. 8. 30. 京城地方法院 豫審掛)
- 判決文(1919. 11. 6. 京城地方法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06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103·105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58∼82·88∼95面
- 每日申報(1919. 11. 8)
- 東亞日報(1927. 7. 26,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