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남 북청(北靑) 사람이다.
1919년 3월 1일 탑동공원(塔洞公園)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북감리교 목사로 재직 중이던 그는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3·1운동의 주도자 33인 중의 한 사람인 박희도(朴熙道)를 통해 3·1운동계획을 접하고, 이에 적극 동참했다.
그는 3·1운동의 추진 과정에서 북감리교 계열의 운동을 적극 주도했으며, 거사 당일인 3월 1일에는 오후 2시 탑동에서 거행된 독립선언식에 참가하였다. 독립선언식 거행 직후 그는 오후 2시 30분 경, 학생·시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를 행진하던 중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이해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7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06∼110面
- 判決文(1919. 11. 6. 京城地方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