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최정식은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숭인면사무소(崇仁面事務所) 앞에서 독립만
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3.1운동 당시의 고양군은 지금보다 면적이 상당히 넓었다. 경성부의 주변은전부 고양군에 속해 있었다. 동쪽은 동대문 밖으로 숭인면(崇仁面)이었고, 한지
면(漢芝面)은 왕십리에서 이태원까지 걸쳐 있었고, 그 밖으로 둑도면(뚝섬)이 있
었다. 서쪽으로 마초까지는 경성부였고, 애오개부터는 고양군 요강면(龍江面)이
었다. 아현북리(阿峴北里, 지금의 북아현동)는 연희면이었다. 이와 같이 고양군
은 경성부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었다.
숭인면에서는 1919년 3월 26일 면사무소에 집합하여 만세시위를 하기로 계획
을 세워 군중이 면사무소 앞에 모였다. 그러나 당일 면사무소의 문을 닫았으므
로 이를 열라고 군중이 함성을 지르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일제의 스
파이의 밀고로 용두리(龍頭里)에 사는 잡화상 최정식을 비롯하여 숭인면 월곡리
정만산(鄭萬山)과 안감리 이재성(李在成) 등이 일경에 체포되었다. 또한 3월 27
일 밤 숭인면 회기리에서는 김원성(金元成) 등이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체포된 최정식은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받고 5월 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출감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5. 1)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137~13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