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권성모는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한지면(漢芝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3·1운동 당시의 고양군은 지금보다 면적이 상당히 넓었다. 경성부의 주변은 전부 고양군에 속해 있었다. 고양군 한지면 상왕십리에서는 1919년 3월 9일 오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날 왕십리공립보통학교(往十里公立普通學校) 교정에 약 300명의 군중이 모여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렀다. 권성모는 김인식(金仁植)·노수천(魯壽天)·이광천(李光天)·최광철(崔光哲)·신순근(申順根)·조영근(曹永根) 등과 함께 열렬히 만세를 불렀다.
또 이날 한지면에서는 서빙고에서 이두현(李斗鉉)·이대흥(李大興)·김삼룡(金三龍) 등이 만세운동을 주장하는 격문을 써붙이기도 했다. 또 6월 29일에는 보광리(普光里)의 기독교인들인 이순화(李順和)·박기운(朴氣運)·이원근(李元根)·진응수(秦應洙) 등과 한강리(漢江里)의 전여수(田汝秀) 등이 서울의 4대문에 8괘기와 십자기를 달기도 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권성모는 경성지방법원에서 5월 6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5. 6)·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1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