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5일 서울 남대문역 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그는 당시 경성보통학교(京城普通學校) 2학년으로 이날 오전 9시경 만세시위에 참가하기 위하여 남대문역 광장으로 나갔다. 사전 약속에 따라 시위군중이 모였는데,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그는 유점선(劉點善)·김승만(金昇萬)·한흥이(韓興履) 등 동교 학생들과 함께 시위대에 참가하여 독립기와 적포(赤布)를 흔들면서 시가행진에 돌입하였다. 시위행렬이 남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일본 군경은 이를 저지하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약 1만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은 그들의 저지선을 뚫고 행진을 계속하였다. 일제는 군경을 더욱 증강시켜 총칼을 휘두르며 시위군중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다수의 시위 참가자를 무차별 체포하였다.
그는 이날 경성일보사(京城日報社) 앞까지 진출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심문을 받을 때 “독립운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심문에 대해 “한일합방 후 조선은 일본 정부의 정치 하에 있었으나 이번에 일본으로부터 떨어져 조선이 단독으로 정치를 집행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여 일제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결수로 옥고를 치르다가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미결구류 90일 통산)을 받았다. 출옥 후 귀향하였으나 옥고의 여독 등으로 출옥 5년 만인 26세를 일기로 요절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豫審終結書(京城地方法院 豫審係, 1919. 8. 30)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58∼82·88∼95면
- 墓碑文(2004)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제16권 267∼26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112∼1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