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충청남도 논산(論山) 사람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학생회장으로 활약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2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뒤 일경의 감시를 피하여 상해(上海)로 망명하였으며, 1921년 8월에 태평양회의 외교후원회(太平洋會議 外交後援會)를 발기 조직하게 되자 그는 서기(書記)로 피선되었다.
태평양회의 외교후원회는 1921년 8월 26일에 상해 법조계(上海法租界)에서 홍 진(洪震) 장 붕(張鵬) 김인전(金仁全) 김태연(金泰淵) 이 탁(李鐸) 신현창(申鉉彰) 조상섭(趙尙燮) 등이 모여서 태평양회의에 대한 외교활동을 후원할 목적으로 발기, 조직된 단체이었다.
이들은 태평양회의에 참여한 열강은 동양 평화의 근본문제인 대한 독립을 완전히 승인할 때까지 적극적인 활동을 계속할 것과 내외 각 지방에 있는 각 단체 또는 개인은 모두 상호 협력하여 일치된 행동을 할 것,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대내외적으로 맹렬한 운동을 전개케 하며, 상당한 금전을 수합(收合)하여 경비에 충당할 것 등의 선언문을 발표하고 보다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1922년 2월에는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경기도(京畿道) 대의원(代議員)으로 피선되어 활동하였다.
1922년 10월 1일에는 김 구(金九) 조상섭(趙尙燮) 손정도(孫貞道) 등과 함께 한국의 독립은 오로지 무력을 양성하여 혈전(血戰)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는 주장 아래 발족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1923년 3월에 그는 국내활동을 위하여 인천에 상륙하다가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59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43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03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831·833·835·850·852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128·129·138·141·143·148·156·15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111·12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173·19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22·129·141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236면
- 동아일보(1923. 3. 11)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53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05·109·110·112·113·117·122·157·160·161·162·163·17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