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평안북도 정주(定州) 사람이다.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이승훈(李昇薰)과 함께 교육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에는 정주의 덕흥교회(德興敎會) 장로로 있으면서 이승훈(李昇薰)으로부터 서울에서는 3월 1일을 기하여 독립을 선언하며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가 송부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의주의 3·1운동에 참가하여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등 적극 활동했다. 직후에 상경하여 김백원(金百源)·문일평(文一平)·차상진(車相晋)·문성호(文成鎬)·김극선(金極善)·백관형(白觀亨) 등과 함께 1919년 3월 12일 서린동의 요리점 영흥관(永興舘)에서 회합하여 조선 13도 대표자의 명의로 「조선독립은 2천만 동포의 요구다. 우리들은 손병희 등의 후계자로서 조선독립을 관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요지의 조선독립청원서(朝鮮獨立請願書)를 작성하고 이를 종로의 보신각(普信閣)앞에서 낭독하여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고취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831·832·841·842·845·85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69·27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8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197·19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24·129·130·13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96·108·141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07·157·224·48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1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