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19년 3월 5일 서울학생들은 학생단 중심으로 제2차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3월 5일 아침 9시가 되자 미리 연락을 받은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 시위 행렬은 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고 남대문 쪽을 향하여 행진을 시작하였다. 4,000~5,000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남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경비 중이던 일제 군경이 이를 저지하였다. 그러나 더욱 늘어난 시위대는 저지선을 뚫고서 두 갈래로 갈라져 시위를 계속하였다. 일대는 조선(한국)은행 앞을 거쳐 종로쪽으로 향하였고, 또 다른 일대는 태평통·대한문 앞·황금정 1정목을 거쳐 두 대열이 보신각 앞에서 합류하였다. 일제 경찰은 칼을 휘두르며 해산을 강행하여 많은 학생들이 중상을 입고 연행되었으며, 시위대열은 강제 해산당하였다. 시위에 참여하였던 보성고등보통학교 민찬호는 체포되어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제13권 81~82면
- 每日申報(1919. 11. 8)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11. 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58~82, 88~95면
- 豫審終結決定書(京城地方法院:1919.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