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권(1986년 발간)
전라남도 순천(順天) 사람으로, 1919년 4월 1일부터 4월 25일에 걸쳐 출판을 통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당시 중앙학교(中央學校) 4년생으로 4월 1일 이춘봉(李春鳳) 및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3년생인 장용하(張龍河)와 함께, 자기집에서 등사판으로 「반도의 목탁 제1호」라는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유인물 100여 매를 인쇄하여 서울안의 각 가정에 배포하였다.
또 4월 12일 자기 집에서 이춘봉·장용하와 함께 「반도의 목탁 제2호」 100여 매를 인쇄하여 각 가정에 배포하였고, 이튿날 역시 자기 집에서 이춘봉·장용하·염형우(廉亨雨)와 함께 「8면에서 관찰한 조선의 참상」이라는 일제의 식민통치 이래의 갖은 수난과 압박을 폭로하는 8매에 달하는 유인물 20여 부를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22일에도 자기 집에서 이춘봉 등과 함께 「반도의 목탁 제3호」 100여 매를 인쇄하여 배부하였고, 25일에는 「반도의 목탁 특별호」라는 이름으로 서양인들이 조선인에 대하여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유인물 70여 매를 등사하여, 배부하는 등 출판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이 해 11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1921년 일본 명치대학(明治大學)에 유학 중,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비밀결사단체인 재일본 조선유학생동맹(在日本朝鮮留學生同盟)을 조직하여 부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1925년에는 북간도(北間島)에서 김창진(金昌珍) 등과 그 곳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길림성(吉林城)에서 체포되어, 5년형을 선고받고 신의주(新義州)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69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229·230·231·24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6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