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전자사료관

통합검색
독립유공자 명단보기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689
성명
한자 徐廷基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3.1운동을 전후하여 중앙학교(中央學校), 4년경부터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독립신문(獨立新聞)자가(自家)에서 복사 발행(複寫發行)하고 유학생동맹 부위원장(留學生同盟副委員長)으로 북간도(北間島)에서 항일투쟁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권(1986년 발간)

전라남도 순천(順天) 사람으로, 1919년 4월 1일부터 4월 25일에 걸쳐 출판을 통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당시 중앙학교(中央學校) 4년생으로 4월 1일 이춘봉(李春鳳) 및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3년생인 장용하(張龍河)와 함께, 자기집에서 등사판으로 「반도의 목탁 제1호」라는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유인물 100여 매를 인쇄하여 서울안의 각 가정에 배포하였다.

또 4월 12일 자기 집에서 이춘봉·장용하와 함께 「반도의 목탁 제2호」 100여 매를 인쇄하여 각 가정에 배포하였고, 이튿날 역시 자기 집에서 이춘봉·장용하·염형우(廉亨雨)와 함께 「8면에서 관찰한 조선의 참상」이라는 일제의 식민통치 이래의 갖은 수난과 압박을 폭로하는 8매에 달하는 유인물 20여 부를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22일에도 자기 집에서 이춘봉 등과 함께 「반도의 목탁 제3호」 100여 매를 인쇄하여 배부하였고, 25일에는 「반도의 목탁 특별호」라는 이름으로 서양인들이 조선인에 대하여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유인물 70여 매를 등사하여, 배부하는 등 출판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이 해 11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1921년 일본 명치대학(明治大學)에 유학 중,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비밀결사단체인 재일본 조선유학생동맹(在日本朝鮮留學生同盟)을 조직하여 부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1925년에는 북간도(北間島)에서 김창진(金昌珍) 등과 그 곳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길림성(吉林城)에서 체포되어, 5년형을 선고받고 신의주(新義州)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69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229·230·231·24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65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서정기 - 전남 순천(順天) -
본문
1897년 3월 6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순천면(順天面) 장천리(長泉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서울의 중앙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 와룡동에 하숙하면서 지하신문 발행 활동에 참여하며 만세운동을 독려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1919년 4월 1일 하숙하던 서울 와룡동(臥龍洞)에서 이춘봉(李春鳳)·장용하(張龍河)·공흥문(孔興文)과 함께 등사판으로 독립을 주장하는 지하신문 『반도의 목탁』 제1호를 백여 장 인쇄해서 주위에 배포하였다. 4월 12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이춘봉·장용하와 함께 등사판 『반도의 목탁』 제2호 백여 장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4월 13일, 집에서 이춘봉·장용하·염형우(廉亨雨)와 함께 등사판으로 「8면에서 관찰한 조선의 참상」이란 제목 아래 “일본이 한국을 합병한 이래 조선 민족은 일본인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압박을 당하고 있다”는 취지의 문서 20장을 인쇄해서 인근에 배포하였다. 4월 22일에도, 『반도의 목탁』 제8호 100장을, 4월 25일에 『반도의 목탁』 특별호 70장을 제작하여 동네의 각 집에 배포하였다.이 일로 붙잡혀 같은 해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는데, 그 해 7월 10일에 열린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으로 감형되었다. 재차 상고하였는데,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법적용의 문제로 대구복심법원으로 이송되었다. 1919년 10월 24일에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이 취소되고 징역 1년을 재차 받았다. 11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풀려난 후, 일본 도쿄의 메이지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1923년 8월 3일 고향인 순천에서 개최된 순천유학생총회에 회원으로 참여하였고, 11월 관동대학살 피해자에 대한 기도회가 순천에서 열렸을 때 순천지방청년회 대표로 참가하였다. 1924년에 메이지대학을 졸업하였다.1931년 5월 순천면 면의원에 당선되었다. 1948년과 1950년 순천군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출판법위반, 보안법위반 징역 2년 경성지방법원 1919-05-12 국가기록원
2 판결문 출판법위반, 보안법위반 징역 1년(원판결 취소), 출판법위반 공소사실은 무죄 경성복심법원 1919-07-10 국가기록원
3 판결문 출판법위반, 보안법위반 본사건 대구복심법원으로 이송(원판결중 서정기의 유죄부분만 파훼) 고등법원 1919-09-22 국가기록원
4 판결문 보안법위반, 출판법위반 징역 1년(원판결 취소) 대구복심법원 1919-10-24 국가기록원
5 판결문 출판법위반, 보안법위반 상고 기각 고등법원 1919-11-24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인쇄 목록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과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서정기(관리번호:689) 오류 유형 *
오류 제목 *
오류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