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충북 괴산(槐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27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자극을 받아 여러 동지들과 함께 서울 시내에 분산하여 우명철(禹命哲)은 서울 숭삼동(崇三洞)에서, 박계갑(朴桂甲)·이효선(李孝善)·김은호(金殷鎬)는 재동(齋洞) 경찰주재소 앞에서, 유창덕(劉昌德)은 서대문·광화문 앞에서, 윤희용(尹喜用)·김윤식(金允植)은 경성공업전문학교 앞에서, 이봉하(李鳳夏)는 종로 4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여 광화문 앞에서 많은 군중을 모아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다 붙잡혔다.
이해 5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5. 26 경성지방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119·1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