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완도(莞島)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경성공업전문학교(京城工業專門學校) 1학년생으로 학생들이 주도하는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는 동년 3월 5일 학생단(學生團)이 주도하는 제2차 독립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여 남대문역(서울역)전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휘날리며 독립만세를 절규하였고 3월 8일에는 김세룡(金世龍)으로부터 '동포여 일어나라'는 격문 2백여매를 받아 이날 밤 가회동(嘉會洞) 일대의 주민에게 배포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11. 6 京城地方法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832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07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196·200·204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95·107·111·141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58∼82·123·155∼18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