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하순에는 서울 시내의 시위운동이 점차 활기를 되찾아가고 탄압하는 일제에게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양상을 보였다. 23일부터는 야간에 수많은 곳에서 시민들이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진행하였다. 종로(鍾路), 동묘(東廟), 돈화문(敦化門), 연건동(蓮建洞), 훈련원(訓練院) 등 만세 시위가 일어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고양군(高陽郡) 각처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렇듯 격화되어 온 서울의 시위운동은 26~27일에 이르러 시내 전 지역에 퍼져 최고조에 달하였다. 지금은 서울로 편입된 고양군 지역의 만세운동도 같은 양상이었다.
김원성은 3월 27일 고양군 숭인면(崇仁面) 회기리(回基里)에서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1919년 5월 1일 경성지방법원, 1919년 5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른 뒤 출옥하였으나 1920년 1월에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5. 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137~138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