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고양군 3.1운동은 3월 5일 용강면 동막리 흥영학교(興英學校)에서 처음 일어났다. 이날 정호석 등의 청년들이 학교에 들어와 남대문 역에서 시작된 학생단 시위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자 여학생들이 이에 호응하여 학교를 나서 대열을 지어 ‘독립만세’를 부르며 마포방면으로 진출하였다.
3월 9일 한지면 상왕십리에서 300명의 주민들이 왕십리 보통학교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연희면 수색에서도 수백 명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운동을 벌였다. 이후 약 2주간 만세시위는 침묵했다. 그러나 3월 23일 상왕십리 시위를 시작으로 3월 28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1919년 3월 23일 밤 김명순(金命順)은 신사리(新寺里) 소재 월암산(月巖山)에서, 문도치는 역촌(驛村) 사람들 40여 명의 만세시위에 합류하여 마을의 당제산(堂祭山)에 올라 횃불을 들고 만세를 외쳤다. 김점성(金點成)과 김윤정(金潤鼎)은 신사리(新寺里)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문도치는 3월 23일 역촌리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19. 5. 1)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42~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