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그는 당시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 2년생으로 도상봉(都相鳳)·강용철(姜龍喆)·이인식(李仁植)·길원봉(吉元鳳)·진용규(秦龍奎)·동주원(董柱元)·윤귀룡(尹貴龍)·이시영(李時英)·조용욱(趙庸郁)·김양갑(金陽甲) 등 동교생들과 함께 탑골공원에서 전개된 독립선언식과 서울 시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마친 수만의 시위군중들은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비며 감격적인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1대는 남대문역·의주통·정동·미국영사관·이화학당·대한문 앞·광화문 앞·조선보병대 앞·서대문정·프랑스영사관·서소문정 등을 지나 본정2정목(현재 충무로2가)에서 일제와 충돌하였다. 1대는 무교정과 대한문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다시 광화문 등을 거쳐 본정으로 들어갔고, 다른 시위대는 무교정과 종로를 거쳐 창덕궁 앞에 이르렀다가 다시 안국동·광화문 앞·프랑스영사관·서소문정·서대문정·영성문 등을 지나 대한문 앞을 거쳐 충무로로 합류하기도 하였다. 이날의 지휘부는 뚜렷하지는 않으나, 주로 학생들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고 평화적이며 자발적인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만세시위 활동으로 일경에 체포된 그는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103∼110면
- 每日申報(1919. 9. 7·11. 6·11. 8)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19. 11. 6)
- 豫審終結決定書(京城地方法院:1919. 8. 30)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58∼82·88∼9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