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전자사료관

통합검색
독립유공자 명단보기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33176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李春鳳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2013 훈격 애족장
1919년 3~4월 서울 관훈동(寬勳洞), 와룡동(臥龍洞) 등지에서 <조선독립신문(朝鮮獨立新聞)> 제16호, <반도(半島)목탁(木鐸)> 제1~3호 및 특별호 등 독립운동을 선전‧독려하는 문건 수십~수백 매를 서울 일대에 배포하였다 체포되어 징역 2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이춘봉은 서울 관훈동(寬勳洞), 와룡동(臥龍洞)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독려하는 문건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춘봉은 1919년 3월 7일경 같은 배재고등보통학교 생도 장용하(張龍河)와 함께 서울 관훈동 이기찬(李基燦)의 집에서 "조선은 독립할 수 있으니 일동은 분기하라"는 격문 20여 매를 복사해서, 7일과 다음날 8일까지 서울 내의 각 집에 배포하였다. 또 이춘봉과 장용하, 이봉순(李鳳舜)은 15일에도 "조선민족은 자신을 먼저 가지라. 조선민족이 조선독립운동을 함에는 자신있게 나아가라"는 내용의 격문을 만들어 20매를 등사해서 각 집에 배포하였다. 이어 28일에 <조선독립신문> 제16호라 제목 하에 "조선독립의 승인은 가까워 왔다. 마땅히 자유 독립을 위하여 용왕매진(勇往邁進)하라"는 문서 300여 매를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이춘봉과 장용하, 서정기(徐廷基) 등은 4월 1일 「반도(半島)의 목탁(木鐸)」 제1호를 약 100매 인쇄하여 배포하고, 12일에는 제2호 약 100매를 인쇄해 배포했다.

13일에는 「8면(面)에서 관찰한 조선의 참상」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이 한국을 합병한 이래로 조선 민족은 일본인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압박을 당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서를 만들어 40부를 배포하였다.

이어 22일에 「반도의 목탁」 제3호를 배포하였다. 25일에는 「반도의 목탁」 특별호를 만들었는데, "내무부 장관이 조선에 있는 서양인 7명을 초청하여 시국에 관한 의견을 질문하였는데, 그 서양인들이 조선인에게 동정하는 답변을 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약 1,000

매 등사하여 배포하였다.

체포된 이춘봉은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항소하여,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다시 항소하였으나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3) 別集 6권 59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6집 1035~1037면
  • 不穩文書 印刷配布者 檢擧의 건(1919. 5. 18)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
  • 刑事控訴事件簿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22)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7. 10)
  • 每日申報(1919. 5. 16)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編, 1967) 제1권 697~69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228~230면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5. 1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92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이춘봉 - 서울 1919년 독립운동 선전문 배포
본문
1900년 2월 8일 서울 삼청동(三淸洞)에서 태어났다. 본적지는 서울 관훈동(寬勳洞) 107번지이며, 1919년 당시 서울 화동(花洞) 47번지에 거주하였다.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 장용하(張龍河)‧이봉순(李鳳舜)‧김기선(金箕善), 보성고등보통학교 학생 공흥문(孔興文) 등과 함께 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각종 독립운동 선전문을 서울 각지에 배포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7일 같은 학교 3학년 장용하와 함께 관훈동에 거주하는 변호사 이기찬(李基燦)의 방에서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경고장 20여 장을 작성하였다. 7일과 이튿날인 8일 이를 서울 각지에 배포하였다. 3월 15일에도 장용하‧이봉순과 함께 독립운동 선전문 20장을 등사하여 배포하였다. 28일에는 장용하 외 1명과 「조선독립신문 16호」 300장을 배포하였다. 같은 해 4월 1일 서정기(徐廷基)의 집에서 장용하 등과 함께 「반도의 목탁 제1호」라는 인쇄물 100장을 인쇄하여 배포하였으며, 12일에는 「반도의 목탁 제2호」 100장, 13일에는 장용하‧서정기‧염형우(廉亨雨)‧김기선‧공흥문 등과 함께 「팔면에서 관찰한 조선의 참상」이라는 8장짜리 인쇄물 20부를 인쇄하여 서울의 각 가구에 배포하였다. 4월 22일에는 「반도의 목탁 제3호」 100장, 4월 25일에는 「반도의 목탁 특별호」 70장을 배포하였으나, 이후 붙잡혔다. 1919년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1919년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2년을 받았다. 1919년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출판법위반, 보안법위반 징역 3년 경성지방법원 1919-05-12 국가기록원
2 판결문 출판법위반, 보안법위반 징역 2년(원판결 취소), 출판법위반 공소사실은 무죄 경성복심법원 1919-07-10 국가기록원
3 판결문 출판법위반, 보안법위반 상고 기각 고등법원 1919-09-22 국가기록원
4 인물카드 출판법위반, 대정8년제령제7호위반 징역2년 경성복심법원 1919-09-22 국사편찬위원회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인쇄 목록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과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이춘봉(관리번호:33176) 오류 유형 *
오류 제목 *
오류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