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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3264
성명
한자 張悰鍵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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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탑동(塔洞)독립만세시위 운동 당시 안국동(安國洞) 거사 책임자(擧事責任者)로서 활약하는 한편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발간하여 민족독립 사상 고취하고 징역3년형을 언도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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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권(1986년 발간)

평안남도 평양(平壤) 출신으로 1919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그는 이날 오후 2시 파고다 공원에서 수많은 학생·시민과 함께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남대문을 거쳐 미국 영사관·대한문·광화문·서대문·프랑스 영사관을 지나 장곡천(長谷川)을 거쳐 조선은행 앞까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3월 2일부터 7일까지 천도교(天道敎) 월보 편찬인 이종린(李鍾麟)으로부터 독립신문을 인쇄할 것을 부탁받고, 2·3·4호의 원고를 받아 자기가 근무하는 경성서적조합 사무실에서, 등사판을 이용하여 임승옥(林承玉)·김영조(金榮 ) 등과 제2호 6백여 매를 인쇄하고, 단독으로 3·4호 6백여 매씩을 인쇄하여 이종린에게 건제 주었다.그 후 이종린이 일경에 체포되자, 그는 스스로 독립신문을 발간하기 위하여 최치환(崔致煥)·최기성(崔基星)·강태두(姜泰斗)·임승옥 등과 협의하고, 13일 유병륜(劉秉倫)의 집에서 자신이 직접 원고를 쓴 독립신문 5호 7백여 매를 인쇄하여 배포하는 등 비밀출판을 하다가 체포되었다.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831·833·834·837·838·849·85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1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46∼156·160∼162·165∼167·173·178·18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181·199·202·203·20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27·130·132·133·141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장종건 - 평남 대동(大同) 서울 만세운동
본문
1895년 3월 10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대동강면(大同江面) 칠산리(七山里)에서 태어났다. 보성전문학교 법과 출신으로, 1919년 당시 경성서적조합 서기로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학생들과 함께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2시 반 쯤에 공원에서 나와 서울 시내를 순회하였다. 이 시위행진은 남대문을 거쳐 미국영사관·대한문·광화문·서대문·프랑스영사관을 지나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앞까지 이어졌다. 만세 시위에 참여한 후 천도교도이자 천도교 월보 편집인인 이종린(李鍾麟)에게서 『조선독립신문』 인쇄를 부탁받았다. 제2·3·4호의 원고를 받아 자신의 근무지인 경성서적조합 사무실에서 등사판을 이용하여 임승옥(林承玉)·김영조(金榮洮) 등과 제2호 6백여 장을 인쇄해 이종린에 건넸다. 이후 이종린이 일제에 체포되자 스스로 『조선독립신문』을 발간하기로 하였다. 최치환(崔致煥)·최기성(崔基星)·강태두(姜泰斗)·임승옥 등과 함께 등사판을 이용하여 3월 13일과 3월 15·16일 서울 광화문통 유병륜(劉秉倫)의 집에서 자신이 직접 원고를 쓴 제5호, 제6호 각각 700장, 900장 씩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3월 22일과 3월 24일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용강면(龍江面) 공덕리(孔德里) 남정훈(南政勳)의 집에서 『조선독립신문』 제8호, 제9호와 부록을 스스로 집필하여 최치환과 함께 인쇄하고 배포하다가 붙잡혔다.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중 18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1년 5월 28일 출소하였다. 1922년 6월 평양에서 설립된 조선물산장려조합의 발기인에 참여하였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시대일보, 조선중앙일보 등을 거치면서 신문사 직원으로 근무하였다. 광복 후에도 대공일보와 서울신문에서 근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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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출판법위반, 보안법위반 경성지방법원의 공판에 부침 경성지방법원 1919-08-30 국가기록원
2 판결문 보안법위반등 징역 3년(원판결중 피고에 관한부분 취소), 미결구류일수 중 180일 본형에 산입 경성복심법원 1920-02-27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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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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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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