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독도면(纛島面)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6일 밤, 김완수(金完洙)의 주도로 동뚝섬(東纛島)과 서뚝섬 주민 수백 명이 여러 곳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에 신원룡(申元龍)과 최자근동(崔者斤洞)이 선두에서 군중을 지휘하며 한 곳으로 모으려 하였으나, 일본 헌병이 공포를 쏘아 군중을 강제 해산시켰다. 이때 김완수는 '공포다. 도망가지 말라'고 소리치며 군중을 다시 모았다. 그러나 군중이 다시 모이기 전에 문창호 등은 체포되고, 염명석은 복부와 팔에 총상을 입고 도주하였다. 그후 4월 10일 염명석이 남대문 밖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을 알아낸 경성헌병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염명석은 1919년 7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4집 398~39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274~275면
- 每日申報(1919. 4. 13)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137면
- 新韓民報(1919. 6. 5)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7. 14)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