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서울 봉래정(蓬萊町)과 의주통(義州通) 방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2일 오전 9시 30분경 조선약학교 김공우(金公瑀),휘문고등보통학교 정지현(鄭志鉉) 등 학생들의 주도로 봉래동(蓬來洞) 공터에서 노동자의 만세운동 참가를 촉구하는 노동자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는 중림동(中林洞),화천정(和泉町, 현 순화동) 부근의 노동자 3~400명을 포함하여 7~800명의 군중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의주로(義州路)로 진출하였다. 선두에는 엄창근이 '노동자대회','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손에 들고 행진하였다. 이들 시위 대열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아현(阿峴)고개까지 행진하였고, 다른 대열은 독립문까지 이르렀다. 이때 신형균(申衡均)이 프랑스영사관 앞에서 '조선독립을 꾀함은 바로 이때다. 각자는 이를 위하여 신명(身命)을 버릴 각오를 하라'고 외쳤다. 이에 당황한 일제는 종로경찰서와 본정(本町)경찰서, 고양군 주둔 일본군 병력까지 출동시켜 강제로 시위를 해산시켰다.
이 일로 체포된 엄창근은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서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5집 150면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5. 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222~224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1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