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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3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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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申化順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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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2017 훈격 대통령표창
1919년 3월 23일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수백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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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창(高唱) : 노래, 구호, 만세따위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외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김공손(金公孫)은 1919년 3월 17일경 휘문고등학교 학생 정지현(鄭志鉉)으로부터 “이번 경성에서 학생이 주동하여 조선독립운동을 개시하였으나 미력함으로, 이제 노동자 계급의 원조를 받지 않으면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우니, 『노동회보(勞動會報)』라는 제호의 인쇄물을 노동자에게 배부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독립운동을 권유하라”는 취지의 의뢰를 받았다.

이튿날인 21일 정지현에게서 봉래정(蓬萊町) 공터에서 노동자대회가 개최된다는 것을 들었다. 2일 간에 걸쳐 중림동(中林洞) 및 화천정 부근의 노동자를 모아 위 대회에 참석하여 그 곳에 모인 수백의 군중과 함께 아현(阿峴)으로 행진하여 시위운동을 하였다. 신화순과 박효석(朴孝錫)은 도중에 만세 시위군중에 가담하여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신화순은 1919년 3월 23일 봉래정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0년 11월 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19. 5. 6)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19권 5~12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신화순 - 서울 1919년 3월 서울 봉래정 만세운동
본문
1892년 4월 29일 서울 중림동(中林洞)(현 서울특별시 중구 중림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과자 판매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22일 서울 봉래정(蓬萊町)(현 봉래동·만리동)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1919년 2월 8일 도쿄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다. 그 소식이 서울에 전해지자,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기사를 접했던 서울의 전문학교 학생들은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2월 20일 서울 승동(勝洞) 예배당에서 학생 대표들은 제1회 학생지도자 회의를 개최하였다. 2월 23일 경 학생대표 중 한 명이었던 김원벽(金元璧) 민족대표의 일원으로 만세시위를 기획하였던 박희도(朴熙道)로부터 3월 1일 만세운동 계획을 전달받았다. 2월 25일 학생대표들은 정동(貞洞) 예배당 구내 이필주(季弼柱) 목사집에서 3월 1일 오후 2시에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를 열기로 결의하였다.그러나 일제 당국은 2·8독립선언서 발표 직후부터 민족지도자들과 학생들의 동태를 주시하였다, 일본 당국이 2월 28일 밤중에 서울 일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견하자, 일제 군경은 3월 1일 오전 10시를 전후로 수색을 전개하였다, 일제 군경의 진압이 본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민족대표 33인은 인사동(仁寺洞) 태화관(太和館)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그리고 학생대표들은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과 3월 5일 오전부터 경성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이후 학생들의 동맹휴학투쟁과 상인들의 철시투쟁, 노동자들의 동맹휴업투쟁이 이어지면서 서울 만세운동의 주체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3월 17일 조선약학교에 제학중인 김공우(金公瑀)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정지현(鄭志鉉)에게서 학생으로만은 독립운동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노동자 계급의 원조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에 3월 20일경 김공우와 정지현은 노동자는 조선 독립운동에 종사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긴 노동회보(勞動會報)를 만들어서 잡화상 배희두(裵熙斗)를 통해서 노동자들에게 배포하였다. 나아가 김공우는 정지현으로부터 3월 22일 경성부 봉래정 공터에서 노동자대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3월 22일 김공우와 배희두는 봉래정 공터에서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노동자들을 규합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봉래정에서 열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000여 명이 오인 시위대의 일원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의주통(義州通)에서 아현(阿峴)일대, 그리고 독일영사관·프랑스영사관을 거쳐서 서대문으로 행진하였다. 엄창근(嚴昌根)은 큰 태극기를 들고 행진을 주도하였으며, 시위대는 태극기를 흔들면서 행진하였다. 인근 마을 사람들도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서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일제 군경은 총칼을 이용해서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였으며, 시위 주도자와 참여자들을 체포하였다.이 일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보안법위반 징역 6월 경성지방법원 1919-05-06 국가기록원
2 인물카드 보안법위반 징역6월 경성지방법원 1919-05-08 국사편찬위원회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산골 유골을 화장하여 산이나 강, 바다 등에 흩뿌려 묘소를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

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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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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