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김공손(金公孫)은 1919년 3월 17일경 휘문고등학교 학생 정지현(鄭志鉉)으로부터 “이번 경성에서 학생이 주동하여 조선독립운동을 개시하였으나 미력함으로, 이제 노동자 계급의 원조를 받지 않으면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우니, 『노동회보(勞動會報)』라는 제호의 인쇄물을 노동자에게 배부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독립운동을 권유하라”는 취지의 의뢰를 받았다.
이튿날인 21일 정지현에게서 봉래정(蓬萊町) 공터에서 노동자대회가 개최된다는 것을 들었다. 2일 간에 걸쳐 중림동(中林洞) 및 화천정 부근의 노동자를 모아 위 대회에 참석하여 그 곳에 모인 수백의 군중과 함께 아현(阿峴)으로 행진하여 시위운동을 하였다. 신화순과 박효석(朴孝錫)은 도중에 만세 시위군중에 가담하여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신화순은 1919년 3월 23일 봉래정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0년 11월 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19. 5. 6)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19권 5~12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