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22일 서울 봉래정(蓬萊町)에서 열린 노동자대회에 참석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정지현(鄭志鉉)에게서 약학교(藥學校) 학생인 김공우(金公瑀)가 “저번 서울에서 학생이 주동이 되어 조선독립운동을 개시하였으나 힘이 미약하여 이 기회에 노동자 계급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우니 『노동회보(勞動會報)』를 노동자에게 배부하여 이들에게 독립운동을 권유하라”는 내용을 의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적극 동참하기로 하였다.
3월 20일 그는 정지현과 협의하여 『노동자는 조선독립운동에 종사하기 바란다』는 기사가 기재된 『노동회보』 11매를 화천정(和泉町) 부근에서 통행인에게 배부하였다. 이튿날에는 정지현에게 22일 봉래정 공터에서 노동자대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동안 화천동과 중림동(中林洞) 부근에서 노동자를 모집하여 대회장에 참석, 그곳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의주통(義州通)에서 아현(阿峴) 고개까지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6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56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222∼225면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19. 6. 23)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19. 5. 6)
- 春川誌(春川誌編纂委員會, 1984) 1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