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기도 양평(楊平)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12일 서울 종로 보신각(普信閣)에서 김백원(金百源)·문일평(文一平) 등과 함께 조선 13도대표자 명의의 독립요구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일 만세운동이 시작된 이래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선풍으로 인하여 서울에서는 며칠간 잠잠한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일제는 일본군으로 하여금 시가 행군케 하면서 민중을 위압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성호 등은 3·1운동 후 서린동(瑞麟洞) 영흥관(永興館)에서 모여 3·1독립선언식의 후속 조치를 취하여 만세운동의 열기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음을 공감하고, 애원서라는 제목 하의 '조선 독립은 2천만 동포의 요구다. 우리들은 손병희(孫秉熙) 등의 후계자로써 조선 독립을 관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취지의 선전 문서를 작성한 뒤 이를 여러 장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그리고 3월 12일 보신각 앞에서 수백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애원서를 낭독하고, 문성호가 선두에서 서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06·10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103∼11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174∼20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95∼121·140∼142면
- 매일신보(1919. 11. 8)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3집 39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8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58∼82·129∼1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