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26일 서울 서대문 일대에서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하순에는 서울 시내의 시위운동이 점차 활기를 되찾아가고 탄압하는 일제에게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양상을 보였다. 23일부터는 야간에 수많은 곳에서 시민들이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일으켰다. 26~27일에 이르러 만세시위는 거의 시내 전 지역에 퍼져 최고조에 달하였다.
김찬희는 3월 26일 밤 서울 서대문(西大門) 부근에서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고 전차의 왕래를 저지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19년 8월 4일 경성복심법원, 1919년 10월 20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위반·왕래방해·소요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3권 26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10. 2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202∼209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118면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5. 28)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8. 4)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