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경성전수학교(京城專修學校) 학생인 김영조는 2월 28일 밤 9시경에 같은 학교 학생 전성득(全性得)의 방에서 김기환(金基煥)과 보성고등보통학교 학생인 이용하(李容夏)를 만나 조선의 독립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밤에 들었다고 하며, 내일 오후 2시경 파고다공원에 가보면 한국의 독립을 계획하는 운동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김영조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복을 입은 채로 오후 2시 10분경에 파고다공원에 갔다.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군중들이 모여 박수를 치고, 또 ‘독립만세’를 부르자 이에 호응하여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종로까지 갔다. 3월 2일 오전 10시경에는 관훈동 155번지 경성서적조합(京城書籍組合) 사무실에서 장종건·임승옥과 함께 『독립신문』 제2호를 등사판으로 200매를 인쇄하여 독립운동의 사실 및 경과를 알리고자 하였다. 또 3월 5일 오전 9시경에는 남대문역 앞으로 가서 학생들의 제2차 독립시위운동에 참가하려 했으나 조금 늦게 도착하여 시위군중이 남대문 근처에 왔을 때 만세시위에 가담하였다.
김영조는 3월 1일 파고다공원 만세시위 및 독립신문 인쇄, 3월 5일 남대문 앞 만세시위에 참여 등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항소하였으나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0년 4월 27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19. 11. 6)
- 판결문(경성복심법원:1920. 2. 27)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1992) 별집 제2집 2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