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고 그 후속 조치로 계속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날 때 이에 참가했다가 일경에 의해 길거리에서 칼로 무참하게 난자당하여 순국하였다. 구낙서는 1919년 3월 27일 오후 9시경,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다른 군중들과 함께 재동파출소(齋洞派出所)를 습격한 후, 다시 거리로 나와 그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때 구낙서 등은 일군경의 탄압으로 해산하였으나, 뒤를 미행하던 일경이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자 그를 넘어뜨리고 예리한 칼로 사정없이 찔렀다. 이로 인하여 두개골(頭蓋骨)은 깨지고 뇌장(腦漿)이 분출될 정도로 난자당하였다. 길거리에 버려진 채 사경을 헤매던 구낙서는 2시간이 지난 뒤에 지나는 행인에 의해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출혈 과다로 오후 11시경 순국하였다. 구낙서의 순국 사실은 당시 3·1운동의 참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로써, 당시 미국 상원에 배포된 한국사정 보고서에 실렸으며, 영국대사관 배속 무관이 본국에 보고한 내용에도 기록될 정도로 세계의 여론을 집중시킨 사건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新聞(1919. 10. 11, 10. 25)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61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80面
- 韓國民族運動史料(3·1運動篇, 其一)(國會圖書館) 26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