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년의 옥고를 치렀으며, 1924년부터 미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종로 탑골공원에서 독립만세선언식이 열리자 이춘균(李春均)과 함께 참가한 뒤, 군중과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종로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대한문(大漢門), 안국동(安國洞), 광화문(光化門), 프랑스영사관, 경성우편국(京城郵便局)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3월 4일 김재익(金在益)에게 받은 붉은 천 2권을 지니고, 5일 아침 대한문 앞에서 군중과 함께 붉은 천을 휘두르며 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 1930년 2월 미국 뉴욕에서 광주학생운동 후원을 위해 조직한 내지학생운동대책강구회에 참여하였고, 1932년 2월 미주 지역의 단일당 결성을 위한 공동대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19. 11. 6)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20. 2. 27)
- 豫審終結決定文(京城地方法院 : 1919. 8. 30)
- 每日申報(1919. 11. 8)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0) 제13집 138~140, 437~439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4) 제17집 164~169, 446~452면
- 朝鮮人學生 高在玩의 渡米에 關한 件(1924.11.2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歐米(7)
- 新韓民報(1927. 8. 25, 1928. 10. 25, 1929. 5. 16, 1930. 2. 6, 2. 20, 2. 27, 1931. 3. 19, 1932. 2. 18, 1933. 7. 13, 193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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