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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30129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高在琓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2014 훈격 애족장
1919년 3월 1일, 5일 서울 시내 남대문역 앞, 종로(鍾路) 파고다공원 등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고창(高唱)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았으며, 1924년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 1930년 2월 미국 뉴욕에서 광주학생운동 후원을 위하여 재미 동포들이 조직한 ‘내지학생운동대책강구회’에 참여하였고, 1932년 2월 미주 지역의 단일당 결성을 위한 공동대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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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창(高唱) : 노래, 구호, 만세따위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외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년의 옥고를 치렀으며, 1924년부터 미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종로 탑골공원에서 독립만세선언식이 열리자 이춘균(李春均)과 함께 참가한 뒤, 군중과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종로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대한문(大漢門), 안국동(安國洞), 광화문(光化門), 프랑스영사관, 경성우편국(京城郵便局)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3월 4일 김재익(金在益)에게 받은 붉은 천 2권을 지니고, 5일 아침 대한문 앞에서 군중과 함께 붉은 천을 휘두르며 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 1930년 2월 미국 뉴욕에서 광주학생운동 후원을 위해 조직한 내지학생운동대책강구회에 참여하였고, 1932년 2월 미주 지역의 단일당 결성을 위한 공동대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19. 11. 6)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20. 2. 27)
  • 豫審終結決定文(京城地方法院 : 1919. 8. 30)
  • 每日申報(1919. 11. 8)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0) 제13집 138~140, 437~439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4) 제17집 164~169, 446~452면
  • 朝鮮人學生 高在玩의 渡米에 關한 件(1924.11.2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歐米(7)
  • 新韓民報(1927. 8. 25, 1928. 10. 25, 1929. 5. 16, 1930. 2. 6, 2. 20, 2. 27, 1931. 3. 19, 1932. 2. 18, 1933. 7. 13, 1934. 3. 15)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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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고재완 - 함경남도 북청(北靑) 3.1운동
본문
1893년 2월 10일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양가면(良家面) 초리(初里)에서 태어났다. 3.1운동 시기에는 서울 간동(諫洞)에 거주하였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서 수학하고, 사립 도쿄물리학교(東京物理學校)에 재학 중이던 1919년 2월 귀국하였다. 귀국하여 서울 간동 전명우(全命禹)의 집에서 동향의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유학생인 김유인(金裕寅)·양주흡(梁周洽) 등과 함께 지내면서 민족운동에 대해 논의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전개된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파고다공원을 나온 시위대는 동서 두 방향으로 분산되었다. 이때 서쪽으로 행진하는 시위대에 참여하여 종로·남대문역·대한문 앞·의주통(義州通, 현 의주로) 등지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학생 중심의 제2차 만세 시위가 3월 5일 오전 9시경 서울 남대문역 앞에서 전개되었다. 강기덕(康基德)·김원벽(金元壁) 등 학생지도부의 지휘로 5,000여 명이 참여한 이날 시위에 동향의 메이지대학 유학생 이춘균(李春均)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7월 12일 출옥하였다. 1921년 8월 재경청우장학회(在京靑友獎學會)가 주도하여 서울과 도쿄·함흥(咸興)에 유학하고 있던 북청 지역 학생들로 조직한 북청순회강연단의 단장을 맡아, 북청 지역 순회 강연을 주도하였다. 1922년 6월부터 7월까지 조선청년회연합회가 전개한 순회 강연에 순회강연단 북선(北鮮) 제1대로 참여하였다. 최순탁(崔淳鐸) 등과 함께 함경도 지역을 대상으로 순회강연을 전개하였다. 1924년 12월 시카고대학교 입학을 위해 도미(渡美)하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을 후원할 목적으로 1930년 2월 미국 뉴욕에서 재미동포들이 조직한 내지학생운동대책강구회(內地學生運動對策講究會)의 서기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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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출판법위반, 보안법위반 경성지방법원의 공판에 부침 경성지방법원 1919-08-30 국가기록원
2 판결문 보안법위반 징역 1년, 미결구류일수 90일 본형에 산입 경성지방법원 1919-11-06 국가기록원
3 판결문 보안법위반등 공소 기각, 미결구류일수중 60일 본형에 산입 경성복심법원 1920-02-27 국가기록원
4 인물카드 보안법위반, 출판법위반 징역1년 경성복심법원 1920-02-27 국사편찬위원회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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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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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장소 탑골공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2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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