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44 일본 (日本) 구주제대 법과 (九州帝大法科) 를 졸업하고 학병 (學兵) 으로 강제동원되어 중국 소주주재 (中國蘇州駐在) 일군 (日軍) 60사단 (師團) 에 배치됨. 을종간부 (乙種幹部) 후보생 (候保生) 으로 훈련받는 동안 의거 (義擧) 를 계획하고 다수 동지 포섭에 나섬.
2. 1945. 2일요일 (日曜日) 의 외출시간을 이용하여 김영남 (金暎男) , 정병훈 (丁炳勳) , 유재영 (柳在榮) , 최용덕 (崔龍德) , 박영 (朴英) , 전풍옥 (全風玉) 등의 동지와 기관총 1정, 소총 7정, 대검, 실탄 300발, 방독면 9개등의 무기와 비서 (秘書) 문서를 휴대하고 최전선 시찰 (最前線視察) 을 가장 (假裝) 하고 탈출에 성공, 중경 (重慶) 으로 향하다.(일군 (日軍) 은 대경 (大驚) 하여 잔류 학병 전원 (殘留學兵全員) 을 동원 (動員) 하여 색출 (索出) 에 당하였으며 색출 책임자 (索出責任者) 는 책임 미완수 (責任未完遂) 로 총살 (銃殺) 되다.)
3.중경행도 (重慶行途) 중 중국군 유격대 (中國軍遊擊隊) 에 합류하여 활동하였으나 동대 (同隊) 의 하대장 (夏隊將) 이 일군 (日軍) 에게 매수 (買收) 되어 의거 학병 (義擧學兵) 7인을 일군 (日軍) 에게 인도 (引渡) 하고 또 동대 (同隊) 의 무기까지 매각 (賣却) 하여 사복 (私腹) 을 채우려 함을 탐지하고 이 부대에 잠입하여 있는 중앙군 (中央軍) 제 3전구특파원 (戰區特派員) 인 왕참모 (王參謀) 등 7명의 중국군 장교 (中國軍將校) 와 합세 (合勢) 하여 하대장 (夏隊將) 및 반역배 (反逆輩) 를 사살 하고 왕참모 (王參謀) 를 책임자 (責任者) 로 부대를 재편성하다(이 유격대 (遊擊隊) 는300여집 (余集) 의 반단 (般團) 과 수백명의 병력으로 태호 (太湖) 에서 활동하는 군단임.)
4. 1945. 3 이한중합동유격대 (韓中合同遊擊隊) 를 인솔 (引率) 하고 승산 (昇山) 의 일군 분견대 (日軍分遣隊) 를 습격하여 일군 (日軍) 을 몰살 (沒殺) 하고 70여정의 무기를 노획하고 중국인 70여명을 새로 가입시킴. 또 촉산 (蜀山) 의 친일 중국보안대 (親日中國保安隊) 를 습격하여 20명을 포로로 하고 소총 20정을 뺏음. 또 일군 (日軍) 점령하 (占領下) 의 경덕 (慶德) 을 습격하여 소총 70정을 노획.
5.효풍 (孝豊) 에 주둔 중 (駐屯中) 인 충의구국군별운동대 (忠義救國軍別運動隊) 에 도착할때는 700병력의 대부대로 확대 (擴大) 되어 큰 개가 (凱歌) 를 올림.
6.분수 (分水) , 합촌 (合村) 의 충의구국군사령부 (忠義救國軍司令部) 로 향하는 도중 한국인 유격대장 정화암 (鄭華岩) 을 만났으나 합류하지 않고 사령부에 도착하여 미 고문관 (美顧問官) 에게 일군 (日軍) 문서 (文書) 와 적정 (敵情) 을 제공하다.(사령부, 육군 소장, 주지초 (駐志超) ) 이 사실이 3전구사령부 (戰區司令部) (사령관. 고세일 (顧裞日) )에 보고되어 전선일보 (戰線日報) 에 대서특필 (大書特筆) 되어 연일 보도 (連日報道) 되다.(전선일보사 (戰線日報社) 조사주임 (調査主任) 안병무 (安炳武) 확인 (確認) )
7.전구 사령관 (戰區司令官) 이 군사위원회 (軍事委員會) 에 특청 (特請) 하여 박영 (朴英) 과 같이 소교대우관 (少校對遇官) 으로 임명 (任命) 되어 구국군정치부 (救國軍政治部) 대일선전과 (對日宣傳科) 에서 선전활동.
8. 4월 다른 5명은후방 (後方) 으로 이송 (移送) 되고 김영남 (金暎男) 과 같이 전방 활동 (前方活動) 을 자원 (自願) 하여 석강성 (淅江省) 천태산맥 (天台山脈) 일대 (一帶) 를 공격하기 위하여 부대가 출동할 때 종군 (從軍) 하여 동강 (桐江) 반안전투 (盤安戰鬪) 에 참전 (參戰) .
9. 6월에일학전 (日鶴殿) 에서 일군 (日軍) 과 교전 하고 천태산 (天台山) 을 점거 (占據) 하고 있을때 일군 (日軍) 대부대 (大部隊) 의 공격을 받았으나 격전 (激戰) 끝에 이를 퇴각시킴.
10. 계속하여유격전 (遊擊戰) 에 참전하다가 광복을 맞아 상해 (上海) 로 와서 상해교민단 (上海僑民團) 의 박용철 (朴容喆) , 구익균 (具益均) 등 과 귀환 (歸還) 교포 (僑胞) 들의 입국 편의 (入國便宜) 를 돕다가 광복군 (光復軍) 의 일원 (一員) 으로 귀국 (歸國) (한독사 (韓獨史)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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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45. 2
3.
4. 1945. 3 이
5.
6.
7.
8. 4월 다른 5명은
9. 6월에
10. 계속하여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전남 순천(順天) 사람이다.
1944년 일본구주제대(日本九州帝大) 법과를 졸업하고 학병으로 동원되어 중국 소주(蘇州)에서 일본군 60사단을 탈출하였다.
그는 김영남(金映男) 등과 함께 무기를 휴대하고 제3전구 충의구국군으로 탈출하여 사령부에 도착, 미국 고문관에게 일본군 문서와 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 사실은 3전구 사령부에 보고되어 전선일보(戰線日報)에 대서특필되었다. 이러한 공적으로 구국군 정치부 대일선전과에서 박 영(朴英)과 함께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그후 광복군에 편입되어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6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378·379·6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