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경상남도 의령(宜寧) 출신이다.
1906년 김태원(金泰元) 등과 같이 태인(泰仁)·진안(鎭安) 등지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이 의거 준비를 할 때 일시 연락관계를 맺어 거사의 효과적 전개를 꾀하기도 하였다.
한때 면암 의진의 소모 오위장(召募 五衛將)을 지냈으며, 그후 면암 의진은 순창에서 적에게 패하고 주장들이 모두 체포 유배되었다.
면암은 대마도(對馬島)로 유배당하였는데 그를 방문하여 버선 1켤레와 일화(日貨) 20냥 등을 차입하고 돌아왔다.
1913년에는 돈헌 임병찬(遯軒 林炳瓚)과 함께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하여 활약하였다.
1914년에 고종황제의 밀조를 받았으며 독립의군부의 조직이 적에게 탐지되어 울릉도로 유배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만세운동에 가담하였으며 영남유림이 중심이 된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유림대표로 서명하였다.
1921년에는 조선고사 연구회(朝鮮古史 硏究會)를 발기하여 동지를 규합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3·1운동비사(이병헌)
- 팔도공의소 취지서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7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권 172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 면암집 23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158면
- 경남독립운동소사 상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