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1930년 평남 평양(平壤)에서 학생으로 재학 중, 평양지역내 다섯 학교의 종교부를 통일하여 평양기독학생(平壤基督學生) 종교부회(宗敎部會) 총합회(總合會)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으로 선임되어 성경학교와 수양회를 개최하여 한글을 가르치는 등 문맹퇴치운동과 민족정신 고취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5년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여 기독교 학생을 중심으로 한 일맥회(一麥會)라는 민족주의 그룹에 가입하여 시국간담회 등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였으며, 그 후 미국으로 도미하였다.
도미 후 1941년 2월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에서 변준호(卞俊鎬)·최능익(崔能翊) 등이 결성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미주후원회(美洲後援會)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소장파들이 중국 한구(漢口)에서 결성한 조선의용대의 중국군대 후방공작을 후원하였다. .
한편, 1941년 4월 2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국내 각 한인단체 대표들이 모여 해외한족대회(海外韓族大會)를 개최하고 동년 8월 미주내 모든 단체들을 통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를 조직하자, 그가 소속한 조선의용대 미주 후원회 역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 후 동년 12월에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위원으로 미국 육군사령부의 허가를 얻어 로스엔젤레스에 캘리포니아주 민병대 소속으로 일명 맹호군(猛虎軍)인 한인국방경위대(韓人國防警衛隊)를 편성하자, 한인경위대(韓人警衛隊)에 입대하여 매주 군사훈련을 받으며 대일 항전을 준비하였다. 또한 1942년 5월 중국에 있는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 편입함에 따라 1943년 1월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가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미주지부(美洲支部)로 개칭되면서 동년 9월 기관지 「독립(獨立)」을 창간하자,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조선민족혁명당 계열의 정치노선을 적극 후원·지지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떠도는 영혼의 노래(최봉윤, 1986) 24·47·78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13권 52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