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05년 멕시코로 이민을 가서 1917년부터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탐피코지방의 파출위원(派出委員)과 지방회장을 역임하면서, 수차에 걸쳐 대한인국민회와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재멕시코 동포들의 독립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1903년 한국인의 하와이 이주가 시작된 이래 1904, 5년에는 미주 본토와 멕시코 등 중남미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미주 각처에 한인사회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1908년 장인환(張仁煥)·전명운(田明雲) 의사에 의한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처단 의거가 일어나자, 재미한인사회를 아우르는 한인단체가 1909년 2월에 결성되었으니, 대한인국민회가 그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가 발전적으로 통합한 대한인국민회는 미주를 비롯하여 러시아 연해주 등지까지도 지부를 설치하였는데, 멕시코의 탐피코지방회는 1909년 4월에 결성되었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활동하던 김익주는 1917년 멕시코 탐피코지방회에 파출위원으로 파견되어 탐피코지방회의 활동을 지도하였다. 이때 그는 탐피코지방회의 회원등록과 독립의연금 모집에 앞장섰다.
그리고 1919년 4월에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성립되자,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멕시코 탐피코지방회의 이름으로 수차에 걸쳐 독립운동자금을 송달하였다. 또한 상해에 본부를 둔 대한민국적십자사에도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2년 이래 멕시코 탐피코지방회의 회장을 맡으며 3·1운동 기념행사, 순국선열기념식 등과 같은 행사를 주도하면서 한인사회의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그리고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조국독립의 의지를 더욱 불태우며 독립운동자금모집에 힘을 쏟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新韓民報(1942. 11. 26, 12. 10, 12. 25, 1943. 1. 21, 4. 1)
- 公文(1922. 11. 1)
- 韓國日報(1994. 2. 13)
- 大韓民國赤十字 證書
- 獨立公債(1919. 9. 1. 이승만)
- 委任狀(1917. 5. 7. 大韓人國民會 中央總會長 代辨 白一圭)
- 送金領收證(멕시코 탐피코, 석유은행 신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