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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60459
성명
한자 金益周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미주방면 포상년도 1999 훈격 애족장
1905년 멕시코로 이민을 가서 1917년이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탐피코지방의 파출위원(派出委員)지방회장(地方會長)을 역임하였고, 수차에 걸쳐 독립운동자금을 납부하여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상해 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를 적극 후원하였을 뿐 아니라 (在)멕시코동포들의 독립의식 고취를 위해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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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05년 멕시코로 이민을 가서 1917년부터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탐피코지방의 파출위원(派出委員)과 지방회장을 역임하면서, 수차에 걸쳐 대한인국민회와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재멕시코 동포들의 독립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1903년 한국인의 하와이 이주가 시작된 이래 1904, 5년에는 미주 본토와 멕시코 등 중남미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미주 각처에 한인사회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1908년 장인환(張仁煥)·전명운(田明雲) 의사에 의한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처단 의거가 일어나자, 재미한인사회를 아우르는 한인단체가 1909년 2월에 결성되었으니, 대한인국민회가 그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가 발전적으로 통합한 대한인국민회는 미주를 비롯하여 러시아 연해주 등지까지도 지부를 설치하였는데, 멕시코의 탐피코지방회는 1909년 4월에 결성되었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활동하던 김익주는 1917년 멕시코 탐피코지방회에 파출위원으로 파견되어 탐피코지방회의 활동을 지도하였다. 이때 그는 탐피코지방회의 회원등록과 독립의연금 모집에 앞장섰다.

그리고 1919년 4월에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성립되자,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멕시코 탐피코지방회의 이름으로 수차에 걸쳐 독립운동자금을 송달하였다. 또한 상해에 본부를 둔 대한민국적십자사에도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2년 이래 멕시코 탐피코지방회의 회장을 맡으며 3·1운동 기념행사, 순국선열기념식 등과 같은 행사를 주도하면서 한인사회의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그리고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조국독립의 의지를 더욱 불태우며 독립운동자금모집에 힘을 쏟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新韓民報(1942. 11. 26, 12. 10, 12. 25, 1943. 1. 21, 4. 1)
  • 公文(1922. 11. 1)
  • 韓國日報(1994. 2. 13)
  • 大韓民國赤十字 證書
  • 獨立公債(1919. 9. 1. 이승만)
  • 委任狀(1917. 5. 7. 大韓人國民會 中央總會長 代辨 白一圭)
  • 送金領收證(멕시코 탐피코, 석유은행 신용사)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익주 Joaquin Kim Lee 경기도 고양(高陽) -
본문
1873년 4월 11일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남률면(南栗面) 방성리(方盛里) 봉계동(鳳界洞)에서 태어났다. 호아킨 김 리(Joaquin Kim Lee)로도 불렸다.1905년 멕시코로 이민을 가서 처음 유카탄(Yucatan)의 초촐라(Chochola) 농장에서 일을 하였는데, 농장 큰 벽에 그림을 그려 농장주들 사이에 알려졌다. 자녀는 큰 아들 김동철(Jose Kim Peck), 딸 마리아 김(Maria Kim Peck), 둘째 아들 김동필(Francisco Kim Peck)이 있다.부인은 백곤차로 제주에서 태어난 해녀 출신이기 때문에 코앗사코알코스에서 물고기를 잡아 굶주림을 이겨냈다고 한다. 유카탄 에네켄 농장에서 계약노동이 끝나자 멕시코시티로 갔다. 1915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멕시코지방회를 결성할 당시, 학무원에 선임되었다. 1917년 멕시코혁명이 발발하자 곧바로 탐피코(Tampico)로 가서 식당을 경영하였다.탐피코에서 1918년 6월 2일 대한인국민회 경찰소를 조직하고 서기에 선출되었으며, 탐피코지방회 파출위원(派出委員)과 지방회장을 역임하였다. 재탐피코 일본인의 보고에 따르면, “탐피코 조선일본인회장(朝鮮日本人會長) 호아퀸 김(Joaquin Kim) 연령 50세 정도, 2남 1녀가 있고, 장남은 호세(Jose(김동필)라고 불리는데, 22~23세 정도로서 4~5년 전부터 남부 멕시코에서 와서 탐피코시에 살고, ‘부란사 콘디스’라고 이름을 붙인 조선풍(朝鮮風)의 2층 가옥을 건축하고 수과자업((水菓子業)-빙수)을 영업하고, 자택에는 태과자(駄菓子)를 제조하여 생계를 영위한다. 그는 중산계층 이하의 자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당지에서는 조선인 중에서 당연 두각을 나타내고 선배로서 추중(推重)되고 있다”라고 한다. 탐피코지방회의 회원등록과 독립의연금 모집에 앞장섰고, 수차에 걸쳐 대한인국민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매일 밤 자택에서 후속 대책을 협의하기 위해 집회를 가졌다. 북미의 대한인국민회와 연락을 취하면서 향후 어떠한 조처를 취할 것인가를 협의하였다. 그리고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성립되자,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멕시코 탐피코지방회의 이름으로 수차에 걸쳐 독립운동 자금을 송달하였다. 또한 상하이에 본부를 둔 대한민국 적십자사에도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일제의 자료에 의하면, “본년(1919년) 초부터 당시에 있는 미국목사를 거느리고 기독교에 입문하여 열심이다”라고 한다. 1922년 이후 탐피코지방회의 회장을 맡으며 3·1운동 기념행사, 순국선열기념식 등과 같은 행사를 주도하면서 한인사회의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1930년 1월 23일자 『신한민보』에 이강산이 쓴 「묵국 한인의 별풍속」 이란 기사에서, 멕시코 한인 부인들의 부도덕한 점을 들어 멕시코지역 한인들을 모욕하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를 본 멕시코 한인들은 격분하였으며 특히 멕시코시티(묵경) 지방회에는 그 해 2월 26일 임원회를 열어 글의 내용을 반박하고 신한민보사를 규탄하였다. 그후 대한인국민회와 알력이 생겨 멕시코시티지방회를 해산하고, ‘한인자성단’을 조직하여 단장이 되었다. 한인자성단에는 주로 흥사단계열 인사들이 참여하였다.1932년 안창호가 중국 상하이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히자 동지들을 위로하기 위해 1백 원을 모금하여 보내는 등 흥사단을 통한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그후 한인자성단과 대한인국민회는 목적이 같기 때문에 1935년 5월 26일 멕시코시티지방회와 한인자성단은 단결과 합작을 위해 합동을 결의하게 되었다.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독립운동자금모집에 더욱 힘을 쏟았다. 광복 후 조국이 남북한으로 분단된 것에 크게 실망을 하였다고 한다. 1955년 8월 11일 멕시코시티에서 사망하였고, 묘소는 멕시코시티 돌라레스 공동묘지(Panteón Civil de Dolores)에 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외소재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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