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임성우는 1914년 6월 미국 하와이에서 박용만(朴容萬)이 설립한 국민군단(國民軍團)의 훈련대 소대 참위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그는 오운(吳雲)·최선주(崔善宙)·이보국(李輔國) 등과 함께 1925년 4월 하와이에서 제1세 동포와 미주에서 출생한 제2세 동포간의 상업과 사교를 장려하기 위한 조미구락부(朝美俱樂部)를 조직하였다.
미주지역의 독립운동은 지역 특성상 교민사회의 자치 및 단합을 도모하는 한편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여 중국에서 활동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미국 정부와 국제기구에 대한 독립외교활동도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이와 같은 지역 여건 속에서 1930년 하와이 사회풍파의 시비가 각 방면에 파급되어 임시정부에 대한 재정 후원이 미약하였지만, 임성우는 와이아와 지역의 동지들과 파쟁에 중립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31년 9월 김구가 계획하고 있던 특무공작에 찬성하고 같은 해 11월 15일에 1천 달러를 송금하였다. 그런데 이 독립자금은 이봉창(李奉昌)·윤봉길(尹奉吉) 등의 거사비용으로 쓰여졌다. 그후 1932년 2월 이러한 그들의 비밀결사가 알려지면서 애국단(愛國團)이 조직되었는데, 임성우는 초대 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935년 1월에는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의 총회장에 선임되어 분열된 한인사회의 재결속을 위해 힘을 쏟았다.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는 1909년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합성협회(合成協會)가 발전적으로 통합한 국민회(國民會)가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를 흡수 통합함으로써 탄생한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였다. 대한인국민회는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중앙총회 아래 북미·하와이·멕시코·시베리아·만주 등지에 지방 총회를 설치하였으며, 다시 지방총회 아래 116개의 지방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그는 이어 1938년 혈성금(血誠金) 재무, 1940년 5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하와이 지부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는 애국단의 후신이다. 애국단이 중국지역의 광복전선통일운동에 참가하여 한국독립당을 결성한데 따라 하와이에 지부가 만들어졌다. 그는 하와이 한국독립당지부를 이끌어 가며, 임시정부의 특무공작과 한국광복군 편성에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1941년 4월 해외한족대회(海外韓族大會)에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대표로 참석, 미주지역 독립운동단체가 연합하여 조직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의 의사부(議事部) 위원으로 선임되어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671·672面
- 白凡逸志(金九, 敎文社) 232面
- 國民報(1937. 11. 17, 1938. 6. 8, 12. 14, 1942. 3. 25, 7. 15, 7. 29, 8. 26, 11. 5, 1943 5. 5, 8. 3, 1944. 1. 19, 3. 8, 4. 6, 6. 14, 7. 5, 9. 13, 1945. 1. 14, 11. 14)
- 하와이(1997. 3. 11)
- 在美韓人50年史(金元容, 1959) 175·215·216·219·292·347·410∼41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8輯 706·710·731·734·772·803·834·835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