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기도 광주(廣州) 사람이다.
1920년대 이래 쿠바지역 한인사회의 지도자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22년 쿠바로 이민와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쿠바지방회의 서기로 활동하였다.
대한인국민회는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중앙총회 아래 북미·하와이·멕시코·시베리아·만주 등지에 지방 총회를 설치하였으며, 다시 지방총회 아래 116개의 지방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그는 쿠바지방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1953년까지 동회의 총무·회장·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그는 쿠바지역 한인동포들의 민족교육을 위하여 1925년 민성국어학교를 세우고 1952년까지 교사 및 교장으로 활약하였다. 또한 청년학원(靑年學院)을 세워 한인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앞장섰다.
1920년대 말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정부가 재정부족으로 매우 어려운 지경에 처하였다는 편지를 받고 쿠바 동포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는 한편 자금모집에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1920년대 말 이후 광복시까지 여러차례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였다.
1938년 대한여자애국단(大韓女子愛國團) 맛탄사스지부 고문을 지냈으며, 1941년 4월 하와이 해외한족대회에서 결성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의 미주지방 의원을 지내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그는 1943년 재큐한족단 맛탄사스지방회 대표로 동포의 권익보호 및 2세 교육, 청년지도자 양성 등을 위해 힘을 기울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在美韓人50年史(金元容, 1959) 412面
- 月刊中央(1994. 11月號) 679∼710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12卷 672面
- 白凡逸志(金九, 敎文社) 232面
- 큐바이민사(태평양주보사, 1954. 2月)
- 시사저널(1994. 6. 9) 68∼71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8輯 835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