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부터 1930년까지 마탄사스 지방회 학무 및 수봉위원, 평의원(1926), 법무원(1927), 총무 및 서기(1928~1930) 등으로 활동함.
1931년부터 1943년까지 카르데나스 지방회 부회장(1931), 법무(1933), 학무(1934~1935), 지방 감찰원(1937), 지방회 서기(1938~1940) , 대표위원(1941), 집행위원장(1942), 총무(1943) 등으로 활동함.
1910년부터 1942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05년 5월 멕시코로 이주한 김덕순은 1909년 공립협회 메리다지방회 회원이 됐다. 이후 1910년에는 멕시코 한인들이 메리다 중심지에 건립한 한인무관양성학교인 숭무학교(崇武學校)에 입학했다. 또한 1918년에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서기에 선임됐다.
1921년 쿠바 마탄사스로 재이주한 김덕순은 같은 해부터 1930년까지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에서 법무(1921), 대의원(1922), 부회장 및 재정조사위원(1924), 학무 및 수봉위원(1925), 평의원(1926), 법무원(1927), 총무 및 서기(1928~1930) 등으로 활동했다. 1922년에는 마탄사스에 한인 2세 교육기관인 민성국어학교(民成國語學校)가 설립되자 초대 교장을 맡았으며 1926~1928년에 재차 교장으로 활동했다. 민성국어학교는 한인 2세 아동들에게 한글과 한국의 역사문화를 가르쳐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주력한 기관이었다.
1931년부터는 쿠바 카르데나스에서 대한인국민회 칼데라지방회 부회장을 시작으로 법무(1933), 학무(1934~1935), 서기(1938~1940), 집행위원장(1942) 등을 두루 역임했다. 1922년부터 1941년까지 3.1절 기념식, 순국선열 추도회 등에 다수 참석해 연설과 추도사를 했고, 1910년부터 1942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1909. 6. 30, 1910. 9. 28, 1921. 10. 20, 1924. 2. 14, 1925. 7. 9, 1926. 3. 18, 1928. 2. 23, 1930. 4. 17, 1931. 3. 12, 1933. 3. 16, 1935. 3. 28, 1939. 5. 25, 1941. 1. 16, 1943. 12. 30)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13권 506, 584, 605, 60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