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쿠바
1918년부터 1942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독립자금을 지원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09년 5월 멕시코로 노동 이민을 온 뒤, 4년간 에네켄농장에서 강제 노동하였다. 1909년 5월 멕시코 메리다에서 국민회 산하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가 창립되자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푸론테라로 이주하여 1911년 2월 대한인국민회 타바스코 신한동(新韓洞)지방회를 설립하고 회원이 되었다. 그 후 다시 메리다로 돌아와 1918년 5월 메리다지방회 사찰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2월에는 본명 범수를 익권으로 개명하였다. 1919년에는 동 지방회 구제원과 시국문제 상임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1년 초 푸론테라와 푸에르토 멕시코 한인 67명과 함께 쿠바로 이주하였다. 같은 해 마나티지방회를 조직하고 구제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다시 카르데나스지방회로 이전하여 줄곧 활동하였다. 1924년 동 지방회 총무로 선임된 이래 1926년 구제원, 1927년 법무 겸 평의원, 1930년 재무 겸 구제원을 겸임하였다. 이 시기 2월 대한인국민회 창립기념식, 3.1절 경축식, 8월 국치기념일 등에서 연설하였다.
1930년 3월 카르데나스에서 천도교(天道敎) 쿠바 종리원(宗理院)을 창립하고 경도집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동 지방회 재무 겸 구제원, 1932년 4월 지방회 관할 진성국어학교 찬성원, 1934년 부회장, 1938년 감찰위원, 1941년 구제위원, 1943년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43년 4월에는 쿠바의 세 지방회가 대표회를 열고 세 단체가 연합한 재큐한족단을 조직하자, 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44년 동 지방회 구제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18년부터 1942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新韓民報)(1911. 3. 8, 1918. 2. 21, 2. 28, 7. 11, 8. 8, 11. 14, 12. 12, 1919. 5. 3, 5. 31, 1920. 10. 7, 1921. 1. 20, 11. 17, 1923. 6. 7, 10. 25, 1924. 1. 31, 2. 28, 3. 6, 3. 20, 6. 26, 7. 10, 1925. 12. 24, 1926. 3. 18, 8. 12, 9. 16, 10. 28, 11. 4, 1927. 3. 17, 12. 1, 1928. 7. 19, 1929. 10. 17, 11. 28, 12. 26, 1930. 1. 30, 2. 13, 2. 20, 3. 27, 4. 3, 4. 17, 5. 15, 6. 12, 7. 24, 8. 14, 8. 21, 9. 25, 11. 27, 1931. 1. 22, 12. 17, 1932. 4. 21, 11. 24, 1934. 2. 22, 5. 31, 1935. 1. 24, 1936. 7. 23, 1937. 3. 4, 1938. 2. 17, 7. 28, 9. 15, 11. 3, 12. 22, 1939. 3. 16, 1940. 1. 25, 6. 27, 1941. 1. 16, 2. 6, 2. 27, 3. 6, 1942. 2. 26, 5. 14, 12. 24, 1943. 1. 28, 5. 6, 5. 13, 12. 16, 12. 30, 1944. 5. 11, 7. 27, 11. 2, 11. 16, 12. 21, 1945. 1. 18, 9. 20, 9. 27, 12. 13)
- 도산안창호전집(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0) 3권 716~717면
- 미주국민회자료집(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1권 355, 419면, 제3권 382, 526, 639, 641면, 제7권 475면, 제9권 110~111면, 제12권 488면, 제13권 82~83, 558, 561, 570면, 제14권 647면, 제17권 294, 390, 45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