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 1939년까지 독립운동 자금을 여러 차례 지원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멕시코로 이주하여 1911년 11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 법무로 선임되었다. 1912년 와하케뇨 지방에서 에네켄농장에서 일할 노동자를 모집하자 이주하였다. 1월 와하케뇨지방회(五岳基那地方會)를 설립하고 재무와 학무로 활동하였다.
1913년 5월 다시 멕시코시티로 이전하여 1919년 멕시코시티지방회(墨京市地方會)에서 활동하였다. 1913년 6월 동 지방회 총무, 1914년 1월에는 서기로 활동하였다. 1918년 2월 베라쿠르즈 지방 대표로 멕시코 5개 지방 대표자와 함께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에 멕시코 연합지방회 설립을 청원하였다. 1918년부터 1919년까지 2년간 지방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대한인국민회 창립기념식, 3.1 독립선언기념식 등에서 연설하였다.
이후 탐피코로 이주하여 탐피코지방회에서 1921년 재무, 1922년 법무, 1923~1925년 회장, 1926년 대의원, 1927년 서기 겸 재무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9월경 멕시코시티로 다시 이주하여 1945년까지 멕시코시티지방회에서 활동하면서 1929년 서기, 1930년 재무, 1935년 서기로 선임되었다. 1935년 6월에는 동 지방회와 자성단이 연합공동회를 개최하자, 양회 합동위원으로 선정되어 두 단체 통합에 노력하였다. 1938년 멕시코시티지방회 집행위원장, 1939년 선전위원, 1942년부터 1943년까지 감찰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감찰위원 시절에는 지방회의 영구 유지를 위한 적립금 모집을 역설하는 한편, 3.1절기념식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해방된 이후에도 동 지방회 교원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지방회 부흥책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1910년부터 1940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新韓民報)(1911. 12. 18, 1912. 11. 4, 1913. 6. 30, 1914. 6. 4, 1918. 2. 14, 7. 25, 9. 26, 1919. 2. 27, 3. 13, 4. 29, 5. 10, 6. 14, 8. 12, 9. 13, 10. 4, 1920. 4. 20, 6. 25, 11. 18, 1921. 4. 21, 11. 24, 1922. 3. 16, 1923. 5. 24, 10. 4, 12. 20, 1924. 2. 14, 3. 13, 11. 13, 1925. 1. 1, 6. 11, 12. 3, 1926. 2. 18, 5. 20, 9. 9, 10. 14, 1927. 1. 6, 1. 20, 2. 17, 3. 17, 7. 21, 12. 1, 12. 16, 1928. 3. 22, 9. 27, 10. 18, 11. 1, 1929. 3. 14, 7. 18, 10. 20, 12. 19, 1930. 1. 16, 4. 17, 6. 26, 1931. 7. 23, 12. 3, 1932. 3. 3, 1935. 3. 21, 6. 20, 6. 27, 9. 12, 12. 5, 1936. 3. 26, 1938. 4. 7, 10. 20, 1939. 5. 11, 6. 29, 10. 19, 1940. 4. 18, 12. 5, 1942. 1. 29, 5. 7, 11. 26, 1943. 4. 1, 1945. 11. 15)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1권 209면, 제3권 36, 81, 341, 372, 386, 613면, 제5권 124, 464면, 제7권 193, 440, 514면, 제8권 415면, 제9권 47~48면, 제10권 138면, 제11권 93, 383면, 제12권 165, 182면, 제13권 681면, 제15권 536면, 제17권 291, 341, 384, 498, 453면, 제20권 6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