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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54180
성명
한자 李鍾旿
이명 李鍾濬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미주방면 포상년도 2015 훈격 건국포장
1910년 멕시코 메리다에서 숭무학교(崇武學校) 교수(敎授), 1917년 해동학교(海東學校) 교사(敎師), 1918년 비시앗지방 교사(敎師)로 민족교육을 위해 헌신함.
1911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회장(會長), 1916년 서기(書記), 1924년 재무(財務), 1926년 대의원(代議員), 1927년 재정조사위원(財政調査委員), 1932~1933년 대의원(代議員), 1936~1939년 집행위원장(執行委員長) 등으로 활동함.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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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부터 1945년까지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메리다지방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숭무학교(崇武學校)ㆍ해동학교(海東學校)ㆍ비시앗지방 교사로 민족교육에 헌신하였다.

1909년 5월 9일 북미지방총회 산하 메리다지방회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10년 2월 작둔지방에 설립된 숭무학교 교사로 군인을 양성하였다. 1912년 메리다지방회 회장, 1915년 데모송경찰소 대표, 1917년 메리다지방회 서기로 활동하고, 같은 해 1월 해동학교 교사, 1918년 10월경 비시앗지방 국어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19년, 1922년, 1924년, 1926~1927년, 1933~1935년 메리다지방회 대의원, 1923년 회금년종(會金年終) 조사위원, 1925년 재무, 1927년과 1936년 재정조사위원, 1937년 집행위원과 서기, 1938년 대표원, 1939년 집행위원, 1940년 미주 대한여자애국단(大韓女子愛國團) 메리다지부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1915년 5월 메리다지방회 창립기념식, 1940년 11월 광복군축하식 등에서 독립선언서 낭독, 국민회 역사, 한국광복군의 역사 등을 강연하였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新韓民報(1910. 3. 2, 6. 1, 6. 8, 1911. 12. 18, 1915. 6. 17, 1916. 12. 21, 1917. 3. 1, 11. 1, 1918. 1. 24, 3. 14, 8. 29, 10. 10, 12. 12, 1919. 2. 27, 10. 7, 1922. 2. 2, 1923. 2. 1, 4. 26, 11. 8, 11. 29, 1924. 10. 23, 11. 13, 11. 27, 12. 11, 1925. 5. 28, 1926. 3. 25, 10. 14, 11. 25, 12. 2, 1927. 1. 6, 1. 27, 9. 1, 1930. 3. 20, 4. 17, 1931. 3. 19, 1932. 2. 25, 12. 15, 1933. 1. 19, 3. 16, 11. 23, 1934. 11. 15, 12. 13, 1935. 3. 14, 9. 5, 11. 21, 1936. 2. 6, 5. 14, 9. 17, 12. 10, 12. 17, 1937. 2. 25, 9. 2, 1938. 2. 10, 4. 14, 5. 19, 9. 15, 1939. 2. 23, 3. 2, 3. 30, 5. 18, 9. 21, 1940. 3. 7, 3. 14, 4. 4, 6. 6, 6. 13, 9. 26, 11. 28, 12. 12, 1941. 2. 20, 5. 22, 5. 29, 10. 2, 1942. 1. 1, 7. 9, 1943. 1. 21, 6. 3, 6. 10, 1944. 1. 20, 1945. 1. 18, 3. 8)
  •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독립기념관, 2006) ⅲ 120-129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이종오 - 서울 종로(鍾路) -
본문
1869년 3월 11일 태어났다. 본적지는 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일대인 숭삼동(崇三洞) 8번지이며, 태어난 곳은 현 종로구 낙원동 일대인 탑동(塔洞)이다. 이명은 이종준(李鍾濬)이고, 멕시코 이름은 Manuel Lee이다. 어려서 서울에서 사숙(私塾)과 소학과를 수료한 뒤 소학교(현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이후 상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1905년 4월 1,033명의 한인과 함께 멕시코로 이주하였다. 멕시코 이민은 국제적 사기이민으로 4년간 노예노동을 해야만 하였다. 1909년 5월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미주 국민회(國民會) 특파원들의 주도로 설립된 멕시코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10년 이근영·양귀선·조병하·이순근 등과 작둔 지방에 숭무학교(崇武學校) 설립을 주도하고, 교수가 되어 한인 2세들에게 군사교육을 실시하였다. 1912년 메리다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15년에는 데모송경찰소 대표로 활동하면서 메리다지방회 창립 7주년 기념행사를 주관하였다. 경찰소는 지방회보다 작은 단위의 조직을 가리킨다. 1917년에는 지방회 서기로 활동하였으며, 1월 8일 한인 2세들의 정체성과 민족의식 함양을 위해 해동학교(海東學校)를 설립하고 교사로 활동하였다. 1918년에는 비시앗지방 국어학교 교사로도 활동하였다. 1919년부터 1924년까지 메리다지방회 대의원으로, 1919년에는 김기창·정덕천 등과 대한인국민회 창립기념식을 주관하였고, 메리다지방을 대표하여 북미지방총회 회장과 부회장 선거에 참여하였다. 1925년에는 재무원으로 선정되었으며, 1926년 3·1운동기념식을 주관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1927년과 1936년에는 대의원과 재정조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7년 메리다지방회 집행위원과 서기로 활동하였다. 1938년에는 지방회 대표원으로 5월 1일 순국선현 추도식과 8월 제28주년 국치기념식 행사 등을 주관하였다. 1939년에는 집행위원장에 선출되어, 안창호 추도식을 주관하였으며, 1940년 5월 1일 순국선현기념식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이동녕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1940년 11월 한국광복군 창설 축하식을 주관하며, 광복군의 역사에 대해 연설하였다. 1910년 6월 숭무학교 특별의연금으로 10원을 후원한 것을 시작으로 1945년까지 국민의무금·임시정부 후원금·광복군 후원금·군사운동금 등 총 80여 원을 후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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