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정휘세는 1927년 3월 일본 경도(京都)에서 조선노동조합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그후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일본 경도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있을 당시 신간회 경도지회 간사로도 활동하였으며, 재일본조선청년동맹(在日本朝鮮靑年同盟)의 회원으로 청년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일본 관서지방에서 노동운동과 청년운동에 참여하던 정휘세는 1928년 7월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에 가입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책임자 인정식(印貞植)의 지도하에 1929년 4월 중순 박제환(朴濟煥)과 협의하여 일본부내에 관서구역국(關西區域局)을 설치하였다. 이때 설치된 관서구역국에서 정휘세는 선전부장을 맡았다. 같은 해 7월에는 경도 시내에서 조선노동조합 청년부 창립대회를 개최하는 등 항일운동을 하고 있었다. 일본내 조선공산당 및 고려공산청년회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면서 일제경찰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정휘세는 1929년 말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931년 5월 15일 경도지방재판소(京都地方裁判所)에서 징역 3년의 판결을 받고 경도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내량형무소(奈良刑務所)로 옮겨졌다. 그러나 옥중에서의 고문후유증으로 인해 그해 11월 24일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7. 3. 18, 1932. 8. 30)
- 中外日報(1929. 3. 14)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제4권 44, 46, 47, 945면
- 在日朝鮮人運動史(朴慶植, 1979) 370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편, 1996) 447면
- 判決文(京都地方裁判所:1931. 5. 1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3집 404면
-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朴慶植 編) 제2권 1168, 1169, 1172, 1173면
- 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編輯委員會, 1997) 제3권 48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