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7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420·462·608면
관리번호 | 869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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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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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炳喆 |
이명 | 없음 | 성별 | 남 |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 ||
본적 |
운동계열 | 광복군 | 포상년도 | 1990 | 훈격 |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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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순번 | 성명 | 이명 | 출신지 | 관련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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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송병철 | - | 평북 의주(義主) | - | |
본문 |
1919년 12월 9일 평안북도 의주(義州)에서 태어났다.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3지대에 입대하여 한국광복군훈련반(韓國光復軍訓練班, 한광반)에서 훈련을 받았다. 1945년경 충칭(重慶)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에 배속되어 근무하였다.태평양전쟁의 전세가 점차 연합군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 일제의 전황이 불리해지던 1944년경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참모장 대리 김학규(金學奎)가 지대장으로 있던 제3지대는 푸양(阜陽)을 중심으로 화이양(淮陽)·지난(濟南)·칭다오(靑島)·쉬저우(徐州)·구이더(歸德)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광복군 제3지대는 중국과 일본 현지에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학도지원병으로 입대한 한인들이 탈출하여 광복군에 합류하여 부대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다.광복군 제3지대 입대 후 한국 독립 전선에 필요한 간부 양성, 중국군과의 연합 작전 기능 향상, 독립 후 국군의 기간요원으로서 간부화를 목적으로 하는 한광반에 제1기로 입소하였다. 1944년 5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5개월여의 교육 기간을 거쳤다. 안광언(安光彦)·김춘정(金春鼎)·최기옥(崔基玉)·김성근(金星根)·김중호(金仲浩) 등과 함께 졸업하였다. 한광반 제1기생은 전원 중국군 중위로 임명되었다.1945년경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총사령부에서는 한광반 출신 대원들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근무지를 정하였다. 이때 신송식(申松植), 이명 진경성(陳敬誠)·윤경빈(尹慶彬)·이영길(李永吉)·박승헌(朴承憲 )등과 함께 임시정부 내무부에 배속되어 근무하였다.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대전에서 거주하였다. 1969년 4월 12일 항일독립투사 김성숙(金星淑)이 별세하자 옛 한국광복군 동지였던 송석형(宋錫亨)·김만진(金晩鎭)·윤치원(尹致源) 등과 함께 조위금 2,500원을 동아일보 대전지사에 기탁하기도 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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