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정위(正尉)로 복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7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411·421·422·617면
관리번호 | 849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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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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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炳河 |
이명 | 없음 | 성별 | 남 |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 ||
본적 |
운동계열 | 광복군 | 포상년도 | 1990 | 훈격 |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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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정위(正尉)로 복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순번 | 성명 | 이명 | 출신지 | 관련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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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송병하 | - | 평북 의주(義州) | - | |
본문 |
1926년 12월 12일 평안북도 의주(義州) 출신이다. 1942년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1지대에 근무한 부친 송복덕(宋福德)의 영향으로 광복군에 입대하였다.부친 송복덕은 1941년 초, 9전구 지역에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제3지대 소속이었다가 1942년 4월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면서 광복군 제1지대원으로 활동하였다. 또 같은 해 10월 임시정부 내무부 경위대원(警衛隊員)이자 한국독립당원으로 활동하였다. 부친의 영향으로 카이펑(開封) 지구에 파견되어 활동하였고, 1944년에는 친형 가족 4명 등과 광복군 훈련단에 입소하여 4개월 뒤 참위로 임관하였다.1944년 9월 하순 이영수(李英守)·김군남(金君南) 등과 푸양(阜陽)으로 옮겨 활동하였고, 1945년 1월 광복군 제3지대 2분대장이 되었다. 1945년에 접어들면서 한인 병사에 대한 초모, 선전 공작이 성과를 거둠에 따라 광복군 인원이 증가하자, 광복군 내에서 독립정신 함양과 군사기술 향상 및 기간 간부화를 목표로 훈련을 실시하였다. 1945년 2월 정위로 진급하였고, 제3지대 제2소대장에 임명되어 훈련대 각 대의 조교를 통솔하여 신입대원 훈련을 진행하였다.1945년 3월 17일부터 제3지대가 정식 편성되면서 훈련대도 구대(區隊)로 확대되었다. 구대의 각 소대 밑에는 2개 분대가 편성되어, 이때 소대장이자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또 이복원(李復源)·박영준(朴英俊) 등과 교본편찬위원을 맡아 미군과 중국군의 장점을 바탕으로 일본식 교련 방식을 가미한 훈련교본을 편찬하였다.광복 이후 1946년, 광복군 육군중장 이범석(李範奭) 일행과 함께 귀국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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