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기도 파주(坡州) 사람이다.
대한제국 말기 노동이민으로 하와이로 건너와서 1906년 3월 하와이 오하우지방의 와이파후 농장에서 환난상구(患難相救)와 일화배척(日貨排斥)을 목적으로 공동회(共同會)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선임되어 동포들의 자치생활을 지도하였다. 그 후 1907년 9월 하와이 각 지방에 분립되었던 24개 단체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대표자 30명이 호놀룰루에서 합동발기대회를 개최하자 동 대회에 참석하여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를 조직하고, 부회장으로 선임되어 조국의 국권 회복과 한인동포들의 안녕 보장, 민족교육 장려를 위해 헌신하였다.
그 후 1908년 11월 미 본토의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통합하여 미주 전역의 유일한 한인민족운동단체를 조직하기 위한 발기인 모임에 한인합성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1909년 2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를 창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동년 7월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 부회장을 역임한 데 이어 1910년 4월에는 동회(同會)의 총회장으로 선임되어 하와이 지방총회를 이끌었다.
그러던 중 1910년 7월 일제의 한국 강점이 현실화되자, 하와이 각 지방 대표자들을 호놀룰루에 소집시켜 대동공진단(大同共進團)을 조직하고 재무로 선임되어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와 연서로 일본 왕에게 일제의 한국 강점을 강력히 반대하는 서한을 발송하는 한편, 국권회복을 위해 각 지방에 독립군양성소를 설립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1914년 6월,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의 연무부(演武部) 사업을 후원하기 위해 박종수(朴種洙)와 함께 하와이 오아후 가할루 지방에 있던 약 1,500에이커의 파인애플 농장을 기부하여 박용만(朴容萬)을 단장으로 하는 대조선국민군단(大朝鮮國民軍團)의 창립을 적극 후원하였다.
그러나 1915년부터 하와이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던 이승만이 1921년 3월 하와이 국민회를 해산시키고 1922년 3월 상해 임시정부의 임시거류민단령(臨時居留民團令)에 의하여 하와이 대한인교민단(大韓人僑民團)을 조직하자,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하와이 각지에 지부를 설치하고 분열된 한인사회를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후 1933년 1월 하와이 대한인교민단을 해체하고 하와이 대한인국민회를 재건하여 분열된 한인사회를 수습하게 되자, 1936년 1월 부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국민부담금제도를 통해 국민회의 채무를 청산하는 한편, 혈성금제도(血誠金制度)를 실시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경상비를 조달하였으며, 노인 동포의 노후를 위하여 호상부제도를 실시하는 등 하와이 대한인국민회를 사실상 부흥시켰다.
1939년 중국의 한인독립운동단체인 광복진선(光復陣線)과 민족전선(民族戰線)이 하나로 통합되고 중·일(中日)간의 전쟁이 고조되자, 이에 영향을 받은 북미 대한인국민회에서는 1940년 9월 미주와 하와이 각 단체 대표자들이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시국대책을 강구할 것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와 동지회에 제의하였다. 이에 따라 1941년 4월 2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국내 각 한인단체 대표들이 모여 해외한족대회(海外韓族大會)를 개최하자,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대표로 참석한 그는 동 대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어 선언문과 해외한족대회 결의안을 작성하는 한편, 독립전선 통일문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봉대(奉戴)문제, 대미외교기관(對美外交機關)의 설치문제, 군사운동에 관한 문제, 미국 국방공작 후원문제, 연합기관 설치문제, 독립금 수봉문제 등을 결의하였다. 이 결의에 따라 동년 8월 미주내 모든 단체들을 통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가 조직되고 하와이 호놀룰루에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議事部)가 설치되자, 의사부 위원으로 선임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후원과 외교 및 선전사업을 힘있게 추진하였다.
한편, 1943년 9월 이승만 계열의 동지회가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탈퇴한후 1944년 6월 독자적으로 외교위원부를 설치하여 활동하자 재미한족연합위원회도 별도의 외교사무소(外交事務所)를 개설하고 외교사무를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동년 11월 주미외교위원부(駐美外交委員部) 위원을 새로이 선임하자, 외교위원으로 선출되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1월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에 당선된 데 이어 이듬해인 1946년 1월에도 재차 총회장에 당선되는 등 40여 년간 조국의 독립과 하와이 한인사회를 위해 헌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132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12권 666, 672면
- 일체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13권 530, 802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827, 851, 858면
- 포와조선인사정(재호놀룰루제국총영사관) 987, 988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09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8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102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8권 37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8집 489, 523, 662, 665, 667~669, 706, 707, 709, 710, 770, 798, 801, 830, 831, 834, 835, 84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493, 890면

